수원시립미술관 기획전

1949년 화초화 '춘난'으로 1회 국전입선
70여 년간 활동… 근현대 미술사 산증인
근대기 마지막 어진화가 김은호가 스승
정부 표준영정인 '정조' 어진 제작참여도
산수풍경화 22점·아카이브 70점 등 공개

이길범 작가. 사진=수원시립미술관
이길범 작가. 사진=수원시립미술관

"‘자기 환경에서 그저 늘 꾸준하게 그림을 그리다 간 작가였다.’ 이런 평가를 듣는다면 그 이상 더 바랄 건 없습니다."(이길범, ‘한국 근현대 예술사 구술채록 사업’ 인터뷰 중)

1949년 화조화 ‘춘난(春暖)’으로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 입선하며 등단한 이길범(李吉範, 1927~) 화백. 70여 년을 한결같이 그림에 매진해 온 그의 생애와 작품을 회고하는 전시가 열렸다.

수원시립미술관이 오는 6월 9일까지 개최하는 전시 ‘이길범: 긴 여로에서’는 수십 년간 수원을 기반으로 활동한 원로작가 이길범을 조명하며 한국화 등 22점과 아카이브 70여 점을 선보인다.

이길범, 수원화성. 사진=수원시립미술관
이길범, 수원화성. 사진=수원시립미술관

이길범은 수원군 양감면(현 화성시)에서 태어나, 1944년 이당 김은호를 만나 6여 년간 그림을 배웠다.

이후 대구, 제주, 부산에서 훈련 괘도를 그리며 군복무를 마치고, 대한도기와 대한교육연합회에서 도안 디자인과 삽화를 그리는 생활을 지속했다.

53세가 되던 해 작업실을 마련하며 전업 작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그는 1980년대 가장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첫 개인전을 열고, 수원미술계 첫 한국화 동인인 성묵회(城墨會)를 결성했으며, 한국미술협회 수원지부장을 역임했다. 또한, 정부표준영정 작가로 참여하며 인물화가로서 실력을 인정받았다.

전시 ‘이길범: 긴 여로에서’ 전경. 정경아 기자
전시 ‘이길범: 긴 여로에서’ 전경. 정경아 기자

전시는 그림 소재에 따라 이길범의 비교적 초기 작품 경향을 볼 수 있는 ‘영모화조화’, 탁월한 묘사력이 돋보이는 ‘인물화’, 수원 작가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산수풍경화’로 나눠 주요 작품을 소개한다.

먼저 ‘영모화조화’에서는 ‘화조’, ‘부귀도’ 등 이길범이 전업 화가로 나선 1980년대 초반 작품들을 볼 수 있다.

그의 영모화조화에는 두루미, 까치, 모란, 국화 등 다양한 소재가 활용됐다. 각각은 장수와 부귀영화 등 상징적 의미를 띠는데, 그중 까치와 참새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길조로 빈번히 등장한다.

또한, 낙청헌 화숙 수학기에 그린 1948년 작 ‘오수(午睡)’도 감상할 수 있다. 해당 작품은 스승 김은호가 내어준 갈색빛 종이에 흰 꽃과 고양이를 묘사한 것으로, 먹과 호분을 이용했다.

전시 ‘이길범: 긴 여로에서’ 전경. 정경아 기자
전시 ‘이길범: 긴 여로에서’ 전경. 정경아 기자

‘인물화’ 섹션에서는 이길범 화업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인물채색화와 데생 작업 등을 소개한다.

작가는 근대기 마지막 어진 화가였던 김은호의 화풍을 본받아 수련하는 과정을 거치며 정밀한 필치와 채색기법을 익혔다. 1988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정부표준영정 제작화가로 참여했는데, 그중 첫 표준영정인 ‘정조’ 어진을 볼 수 있다. 세밀한 붓질과 사실적인 묘사로 마치 사진을 찍은 것과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영정과 달리 간결한 형태와 은은한 색채가 주를 이루는 여성 인물화들도 출품됐는데, 서정적인 색채와 정겨운 화면 구성은 작가가 오랜 시간 삽화가로 활동했던 영향으로 추측된다.

전시 ‘이길범: 긴 여로에서’ 전경. 정경아 기자
전시 ‘이길범: 긴 여로에서’ 전경. 정경아 기자

이길범의 산수풍경화는 금강산 등 자신이 유람을 다니며 경험한 아름다운 경치를 화폭에 담은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수원화성을 배경으로 한다.

‘수원화성’, ‘방화수류정’ 등 수원 작가로의 정체성이 느껴지는 작품들을 ‘산수풍경화’ 섹션에서 만날 수 있다.

작가는 실제 풍경을 스케치와 사진으로 옮겨온 뒤 완성하거나 실제 장소의 인상적인 부분들을 재조합하고 회화화하는 방식을 보여 준다. 때문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풍경에 상상력이 더해져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밖에 아카이브장에서는 삽화가 시절 작가가 그린 영어교과서를 비롯한 스케치, 스크랩북, 전시팸플릿, 인터뷰 영상자료 등을 전시해 이길범의 발자취와 더불어 수원미술사가 전개돼 온 과정을 되짚는다.

전시는 수원시립미술관 1전시실에서 만나 볼 수 있으며 성인 4천 원, 청소년 2천 원, 어린이 1천 원으로, 수원시민에는 25% 할인을 제공한다.

정경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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