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통일을 위한 노력은 이 시대 새로운 독립운동이다.” 남북분단 상황에서 맞은 일제의 ‘8·15항복’을 조국의 진정한 독립이나 광복으로 볼 수 없다는 의지를 담아 백범 선생이 전국을 순회하며 유언처럼 호소했던 말이다. 조국분단의 최고 원흉이 일제임을 일제의 항복 선언 전에 이미 간파한 백범으로서는 일제의 한반도 분단책동에 의한 남북 대치 상황을 결코 광복이라 칭할 수 없음은 당연한 것이었다.

일제의 항복 직전인 1945년 8월 8일 중국 서안에서 백범은 미국의 윌리엄스 도노반 장군(소장, 미국 OSS 최고책임자)과 함께 미 OSS특공부대 장교들로부터 훈련을 마친 광복군 OSS대원들의 훈련수료식을 가진바 있다. 광복군 사령탑인 지청천 장군과 이범석 장군이 백범을 수행하여 가진 이날 수료식에서는 장준하와 김준엽을 위시한 청년들이 사실상 연합군 장교로 임관하는 날이기도 하였다.

3일 뒤인 8월 10일 오후 중국 사천성 성도기지에 착륙해 있던 B29에는 미국 OSS특공부대 써전트 소령 등 교관들의 지휘를 받아 한국광복군 OSS 대원들이 한반도 침투작전을 실행하기 위해 탑승해 있었다. 그들은 야간을 이용해 한반도 각 지역에 낙하산으로 하강하여 일제의 군사시설을 탐지 보고하고 미군의 공습 지역을 유도하는 등의 정탐과 유사시 요인 암살 및 군사시설 파괴공작 임무를 부여 받았다.

이들이 탄 B29가 한반도 영공 진입을 위해 활주로를 뜨는 순간은 한국광복군은 명실상부한 국제연합군의 일원이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문지기를 자임하며 27년여 중국 대륙에서 임시정부를 이끄는 동안 장개석이 총통으로 있던 중국국민당과 모택동이 이끈 중국공산당 모두를 우군으로 삼은바 있을 정도로 탁월한 외교전략가이기도 했던 백범.

애석하게도 8월 10일 오후 ‘한국광복군의 UN군 편입을 통한 항일전선 투입’이라는 그의 비장의 외교전략은 백지화되었다는 참담한 통보를 받았다. 한반도 진격작전을 위해 시동을 걸고 있었던 B29에 탑승하고 있다가 비통한 심정으로 귀대한 한국광복군 OSS 대원들에게 백범은 일제가 항복을 확약함에 따라 한반도 진공작전이 취소되었음을 알리며 함께 눈시울을 적셔야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8.15 항복’을 앞둔 일제는 8월 8일 새벽 한반도 분단책동을 결행하였다. 일제는 스탈린에게 밀사를 보내 일제 항복 직후 한반도에 주둔하게 될 미군에 앞서 소련군으로 하여금 한반도 38선 이북을 선점하도록 협조할 의향이 있음을 전했고, 스탈린은 당일 아침 소련군의 한반도 진격을 명령함에 따라 일제의 ‘8.15 항복’ 전인 8월 13일까지 소련군은 북한 전역을 점령했다.

‘한반도 분단-냉전체제인 미국과 소련의 한반도내 대립-한반도내 미·소 국지전-미군의 일본영토 활용-전후복구 성공’이라는 천인공노할 일제의 한반도전략은 일본 스스로 자인한 바 있다. ‘6·25’ 발발 소식을 접한 당시 일본 수상이 “이제 우리는 살았다!”고 외친 사실이나 지금은 금서가 되어 있는 일본 외무성 감수 ‘일본외교백년소사’ 등은 경제부국의 대열에 올라선 오늘의 일본은 한반도 분단과 일제가 유도한 ‘6·25 전쟁’의 터 위에 세워진 것임을 확증하고 있다.

“어떠한 사상이나 이념도 동포간의 하나됨 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는 공감 하에서 1948년 4월 20일 백범 선생과 김일성 북조선임시인민위원장간의 ‘양김회담’이 있은 70주년인 올해. 남북정상들 간의 역사적인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의 맥을 잇는 남북정상회담이 한 해 동안 세 차례나 열리게 되었다. 민족공존은 물론 인류행복을 위해 한반도가 획기적 공헌을 할 수 있는 천부적 기회를 맞고 있다. 일제의 한반도 분단책동을 극복하고 진정한 의미의 광복을 이룰 때가 온 것이다.

국회는 이러한 천부적 호기와 민족적 열망을 직시하고 남북정상 간의 ‘4·27 선언’을 헌법(60조 1항)과 법률(남북관계발전에 관한 법률 제21조 제3항)에 따라 국회가 조속한 동의를 함으로서 규범력을 부여해 남북관계가 정권에 따라 요동되지 않는 ‘법치주의 시스템’이 작동하도록 하여야 한다.

이러한 법치주의 시스템을 기반으로 남북 스포츠교류나 경의선 공사와 같은 지엽적인 남북공조를 넘어 유럽과 연계한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중국횡단철도(TCR)·몽골횡단철도(TMGR)·만주횡단철도(TMR)가 ‘남북종단철도(TKR)로 통합한 ‘5T통합철도’시대와 같은 통 큰 역사를 열어가야 한다. 이러한 날이 실현되기를 바라는 이유는 유통과 관광 혁명으로 인한 막대한 국부창출과 더불어 민족분단의 원흉인 일본이 한반도에 사실상 복속됨은 물론이고 인류행복과 세계 역사를 한반도가 주도하는 시대가 열릴 것이기 때문이다.


홍원식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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