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9년부터 시작된 프랑스혁명은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트와네트가 혁명의 광장에서 단두대에 목이 잘리는 것으로 외형적으로나마 종결되었다. 루이 16세가 단두대에서 목이 잘린 그 날 로베스피에르는 루이 16세의 처형을 보고 프랑스의 실권을 장악한 집정관으로 취임하여 프랑스혁명의 종결자가 되었다.

로베스피에르는 파리의 명문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하여 변호사가 되었고 고향에서 서민을 위한 변호사 활동에 주력하였다. 그는 노동자와 농민의 권익을 위하여 당시 귀족과 영주들을 상대로 변론을 하여 인기를 얻고 그 것을 발판으로 서민과 노동자의 대표가 됐다. 로베스피에르는 왕정을 공격하는 파격적인 연설로 더욱 인기몰이에 성공하여 과격 좌파 그룹인 쟈코뱅당의 리더 자리에 올라 왕정을 무너뜨리고 프랑스혁명을 이루게 된다.

로베스피에르는 최고의 실권자가 된 후에 “모든 프랑스 국민은 우유를 마실 권리가 있다”라고 선포하고 우윳값을 반값으로 내리라고 지시한다. 이것은 그가 서민과 노동자를 위한 정책이자 혁명을 이루는데 절대적인 지지세력인 빈곤한 노동자와 농민을 위한 중요한 경제정책이었다. 일시적으로는 우유 값이 반값이 되어 우유를 마시는 서민이 많아졌고 서민들은 좋아라 했다.

그러나 우유를 공급하던 농민은 터무니 없는 가격에 우유를 공급하느니 차라리 소를 도축하여 고기로 팔아버리게 되고, 우유의 품귀로 그 값은 이전 보다 몇 배로 폭등하게 된다. 그래서 로베스피에르는 건초의 값을 반값으로 내리라고 명령한다. 그러자 건초업자는 건초를 헐값에 팔아 생산원가에도 못 건지자 아예 건초를 불태우게 된다.

결국 농민은 우유생산을 못하게 되고 우윳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아 귀족이나 마시게 되고 서민은 우유 구경도 못하게 되는 최악의 사태로 발전하게 된다.

이렇게 서민과 노동자 농민을 위한다는 어리석은 포퓰리즘에 기반한 정책으로 최고권력자의 위치에 오른 로베스피에르는 과격하고도 포퓰리즘적인 정책을 계속하다가 정작 본인이 1794년 7월 단두대에서 처참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지금 우리나라는 청년 실업률이 유래가 없는 최고조에 달하고 있고, 선진국 보다 높아진 최저임금의 폭등은 편의점의 알바생에게는 달콤한 우유 값으로 느껴지지만 결국 그 일자리조차 빼앗기고 있다. 다급해진 정부는 세금을 퍼부어 공무원 숫자를 늘려서라도 청년 취업률을 높이려는 바보 정책만 쏟아내고 있고, 공시학원의 메카인 노량진에는 공시생으로 넘쳐나고 있다.

일자리 창출은 기업의 몫임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을 큰 도둑으로 몰아 마치 착한 국가인 것처럼 서민을 속이고 있다. 이런 토양에서 누가 신규직원 채용을 늘리고 기업을 키우고 싶겠는가? 언제든 기업은 국가를 버리고 외국으로 탈출할 수 있다. 세계적인 기업 IKEA가 모국인 스웨덴을 버리고 떠난 사실이 주는 따가운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에서도 언제든 삼성이 현대가 그리고 수많은 국내 기업이 기업하기 좋은 토양을 따라 우리나라를 버리고 떠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영세 상공인은 IMF보다 더 심한 경제적 어려움에 빠져들고 있고 폐업률은 연일 최고치를 달리고 있다. 길거리에는 ‘점포폐업’, ‘점포임대’라는 글귀가 가슴 아프게 늘어만 가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미·중 무역전쟁은 그 끝을 모를 상황으로 치닫고 있고 우리는 그 고래싸움에 갈 곳을 못 찾고 있다.

역사는 절대로 예언할 수는 없다지만 ‘로베스피에르의 우윳값’교훈을 통해 우리는 공자님의 말씀인 옛 것을 되새겨 새롭게 배운다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을 깊이 되새겨 볼 때이다. 간절한 바람이 있다면 이 땅에서 바보여서 불운하게 생을 마감한 로베스피에르가 환생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용재 경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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