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시나리오다.

1년 전까지 선수 생명이 위태롭던 수원 한국전력의 이재목(30·센터)이 프로 데뷔 후 가장 '뜨거운' 시즌을 보내고 있다. 주축 미들블로커로 활약하며 한국전력이 리그 3위로 전반기를 마무리하는 데 큰 힘을 보탰다. 지금은 팀 전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자원이 됐다. 이재목은 "팬들의 응원을 받으며 코트를 누비는 게 아직도 어색하고 신기하다"며 웃었다.  

1년 전 이재목의 목표는 어느 구단에서든 프로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거였다. 시즌이 한창이던 2016년 1월 오른쪽 무릎 수술을 받은 뒤 재활이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선수 생명의 위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연골이 닳고 인대까지 파열 돼 수술을 피하긴 어려웠다. 그해 6월 소속팀인 삼성화재에서 임의탈퇴를 공시했고, 2016~17시즌에는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시즌이 개막하는 10월까지 제대로 무릎을 구부리지 못할 만큼 재활 속도가 더뎠다고 한다. 이재목은 "운동은 고사하고 일상생활도 힘들었다. 배구를 그만둘 생각까지 했다"고 돌아봤다. 

이재목은 재활을 마친 지난해 6월부터 새로운 팀을 찾아 나섰다. 일일이 선수 변동 사항을 확인하며 센터가 부족한 팀을 물색했고, 직접 감독한테 연락해 테스트 기회를 달라고 부탁했다. 한 팀에서 테스트를 받았지만 같이 하기 어렵다는 통보를 받았다. 마지막으로 한국전력 문을 두드린 끝에 다시 유니폼을 입게 됐다. 이재목은 "한국전력 입단이 불발되면 다른 길을 걸을까도 생각했었다"면서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 감독님이 장점을 좋게 봐주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재목은 한국전력에 합류하면서 배구 인생의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무엇보다 출전 시간이 대폭 늘어났다. 지난해 9월 KOVO컵 대회부터 주력 센터로 활약하더니 이번 시즌 모든 경기 코트를 누볐다. 2010~11시즌 프로에 데뷔한 이래 정규리그에서 이렇게 많은 출전 기회를 잡은 건 처음이다. 삼성화재에서 교체 멤버로 뛸 때는 14경기(19세트)가 한 시즌 최다 출전 기록이었다. 올 시즌에는 5·6라운드를 남겨둔 현재 24경기(89세트)를 소화했다. 이재목은 "출전 시간에 연연하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든 제몫을 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며 "보완할 점이 많은데, 후반기에는 더 나은 경기력으로 팀의 도약을 뒷받침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재목은 운동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마다 "매일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말을 되뇌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다. 자기관리도 철저히 했다. 남들보다 늦은 고교 1학년 때 배구를 시작한 그에게 선수 생활이 순탄한 적은 거의 없다. 이재목은 "프로에 와서 기회를 얻지 못해 힘들어하는 후배들이 많다"면서 "뒤늦게 기회를 잡은 내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힘이 되면 좋겠다"고 했다. 

장환순기자

사진=김금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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