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15년 한일 위안부합의에 대해 파기하지도, 이행하지도, 재협상하지도 않는다는 발표를 했다. 잘못된 합의이므로 이행하진 않지만 국가 간 외교 협상인 것은 분명하므로 재협상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의 출연금 10억엔은 일단 받지 않은 상태로 두고 그 돈을 쓰기로 한 곳은 정부가 출연하여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반환이라는 구체적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결국 일본 정부와 협의하여 돌려주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대통령도 어제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 부분에 대한 기자 질문에 일본 부와 피해자 할머니, 시민단체들과 협의하여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정부 발표에 대해 피해당사자 할머니들은 이를 전혀 납득하지 못하겠으며 정부가 기만하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정부의 발표가 사실상 파기 선언이라면 협상을 다시 해서 반드시 사죄를 받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계속해서 국가 중심이 아닌 피해자 중심으로 해결하겠다고 누누이 밝혀왔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 조치가 그 원칙에 부합하지 못하고 아쉬운 부분이 많은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강경화 외교부장관도 피해자 할머니들의 요구를 모두 충족시키지 못한 점에 대해 죄송하다고 덧붙였다.

우리 정부가 강경하게 재협상 카드를 내놓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잘못된 합의라도 국가 간 맺은 합의를 깨기 어려운 외교 현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일본이 북핵문제나 한·미·일 공조 등 안보에 중요한 파트너란 점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정부의 고심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실현 가능성은 없어 보이지만 일본 측에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 회복을 위한 노력을 기대한다고 밝혀 자발적으로 사죄 등 조치를 하라는 의사를 분명히 표현했다. 일본 측은 여전히 1mm도 움직일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며 강 장관의 발표 1시간 만에 외교경로를 통해 항의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위안부합의에 대해 파기 선언은 하지 않았지만 사실상의 파기선언인 것은 분명하다. 결국 피해 할머니들에 대한 치유조치는 우리 정부가 최대한 존엄과 예를 갖춰 일본 돈이 아닌 우리 정부의 출연금으로 진행하고, 일본 정부가 할 일은 일본 정부가 알아서 할 것을 요구한 셈이다. 외교현실을 감안한 정부의 고육지책에 피해자 할머니들과 일본 모두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 정부에 책임을 묻지 않고 우리가 할 일만 하겠다는 이번 조치에 할머니들을 어떻게 설득할 지가 최고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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