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안양시, 기억 속의 안양… 눈에 띄지 않는 근대문화유산

▲ 노리다케공원 한 켠에 있는 전시벽.

안양은 안양예술공원에 있는 안양사에서 지명이 생겨난 오랜 도시이다. 1941년 서이면이 안양면으로 변경되고, 1949년에 안양읍, 1973년에 안양시로 승격하였다. 이곳은 서울특별시 금천구와 관악구에 접하며, 과천시, 의왕시, 광명시, 시흥시, 군포시에 맞닿아 있다. 1994년에 안양 일부가 군포시와 의왕시로 편입되었다. 196~70년대까지 경수공업을 중심으로 한 산업과 포도 농사 등이 발달했으나, 공장을 옮기고 논밭은 개발하여 산업과 농업이 점차 줄었다. 이제는 산업도시의 명성이 무색하다. 


▲ 안양1번가

▶ 안양의 구도심 안양1번가

안양에서 구도심은 안양역 주변인 안양1번가 일대이다. 일제강점기 때도 번화하여 서이면사무소 근방에 경찰서, 소방서가 모여있는 중심지였다. 시간이 흐르며 술집, 옷집, 음식점, 숙박업소, 시장이 생겨나 번화가가 된다. 이후 평촌신도시에 평촌역, 범계역, 인덕원역으로 상권이 나뉘었으나, 찾는 연령대가 다르다는 보고서가 있다. 안양구도심은 안양시보다 성장률이 더디지만, 아직도 지역 주민이 꾸준하게 찾는 생활중심지이다.

수많은 구도심이 쇠락했지만, 안양은 다르다. 수도권의 구도심 중에서 가장 활발한 편이다. 안양역과 버스 등 교통수단이 발달하여 오가기 편하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몇십 년 전에는 군포, 안산, 시흥 등에서 찾는 사람도 많았다. 당시에 서울은 꽤 멀었으며, 안양이 손쉽게 다닐 거리였다. 조흥은행 앞과 본백화점 앞에서 친구를 만나 안양1번가에서 놀거나, 안양중앙시장에서 장을 본 기억이 있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안양 주민뿐 아니라, 인근 사람들에게도 집단 기억이 있는 곳이다.

하지만 근대문화유산은 눈에 띄지 않는다.

이 터는 변화를 빠르게 받아들이며, 화려하게 바뀐다. 모든 것은 기억 속에 있을 뿐이다. 조흥은행, 안양전진상복지관, 삼원극장, 안양백화점, 본백화점, 벽산쇼핑센타 등등이 없어지거나 크게 변했다. 그에 비해 안양일번가 지하쇼핑몰은 안양역과 안양 중심가를 지나는 길목으로 언제나 활기차다. 1978년에 개통한 안양지하상가는 중앙시장에서 삼원극장이 있던 중앙사거리까지 연결되었고, 안양역전 지하상가는 1982년에 뒤를 이었다. 지금은 구분 없이 안양일번가 지하쇼핑몰로 연결된다.



▲ 서이면 사무소
▶ 구 서이면사무소

안양1번가에서 남부시장으로 가는 길에 술집과 숙박업소 사이에 덩그러니 있는 구 서이면사무소는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00호이다. 1914년에 과천군 상서면과 하서면을 통합하여 서이면사무소로 세웠다. 그때는 다른 곳에 있었으나, 1917년에 안양중심지가 된 안양리로 이전한 건물이다. 1941년에 시흥군 안양면사무소로 명칭을 변경했으나, 시흥군 안양읍으로 승격하면서 매각했던 건물을 2002년 7월 안양시에서 매입하여 복원공사를 하였다. 한때 의원, 주거로 사용되었으며, 갈빗집으로 운영되기도 했다. 서이면사무소는 ㄱ자형으로 지붕 끝 선을 살짝 들어 올린 팔작지붕과 홑처마로 된 큰 규모의 한옥이다. 일제강점기 친일과 수탈의 현장이라는 비난이 있지만, 안양1번가가 예부터 중심지였다는 흔적이기도 하다.

안양1번가에서 남쪽 끝으로 내려가면 남부시장이 있다. 남부시장은 1960년대에 도매 전문으로 시작하여 도소매 시장으로 발전했다. 무거운 물건을 날라주는 손수레꾼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1997년 9월 6일에 평촌동 안양농수산물 도매시장이 생기기 전까지 안양뿐 아니라 군포, 의왕, 과천, 안산, 시흥 등지에 농산물을 담당하던 곳이다. 예전보다 덜하지만, 지금도 청과물 도매시장 역할을 하며 식자재와 농수산물 점포가 있다.



▲ 안양중앙성당
▶ 안양중앙시장과 안양중앙성당

안양로를 건너 벽산아파트 방향으로 걸어가면 안양중앙시장이 있다. 여기는 남부시장과 성격이 다르다. 안양중앙시장은 1961년 11월 19일에 개장한 전통시장으로 개장 때보다 훨씬 커진 면적으로 증가했다. 각종 채소부터 수산물, 공산품 등등이 있는 종합시장이며, 포목골목, 순대골목 등 골목 상권이 활발하다. 평일에 찾아간 중앙시장과 남부시장은 한가로웠다. 활기찬 구도심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였다. 그러나 주말은 달랐다. 생동감이 넘치고, 시장다웠다.

그 중심에 안양중앙성당이 있어서일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안양중앙성당은 건축가 김영섭의 작품이다. 성당설계를 많이 한 분이다. 경기도에 설계한 성당은 화성시 향남읍 발안천주교회와 부천시 원미구 심곡동 심곡성당, 안양중앙성당 등 이다. 발안천주교회는 처마곡선을 패러디한 지붕 디자인이 멋지고, 심곡성당은 큰 알 형태가 인상적이다.

안양중앙성당은 근대문화유산은 아니다. 1991년에 건립한 현대건축물이지만, 26년 동안 전통시장과 어우러져 지냈다. 시장 거리에서 꺽어들어야 성당 본당이 보이므로, 처음 찾은 사람은 지나칠 수 있다. 그러나 꺾임 배치는 시장에서 성당으로 들어가는 고요한 시간을 갖는 여유를 준다. 번잡한 점포 사이에서 조용하고 온화한 공간을 만들었다. 2천500석의 거대한 성당은 겹치고 나누는 디자인으로 거부감을 줄였다. 외부 공간도 넓어 지역사회에서 중심이 될 수 있고, 복잡한 구도심에서 많은 사람이 모이는 장소가 될 수 있다.



▶ 남겨진 기억과 밀려난 기억

안양구도심처럼 변화가 빨랐던 동네에서 건축 유산을 온전하게 남기는 일은 힘들다. 이때 일부분을 남기는 부분 보존이 있다. 건축물이나 부지 전체가 아닌 상징물을 남길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그릇과 찻잔으로 유명한 노리다케는 나고야 공장을 옮기며, 부분을 남겼다. 노리다케 공장은 20세기 초반 나고야에서 가장 높은 굴뚝이 있었다. 1978년에 공장 기능을 이전한 후 빈 건물이 낡아 철거를 검토하던 중 창립 100주년 기념하는 사업을 계획하여, 나고야 공장의 삼 분의 일을 남겨 노리다케공원(ノリタケの森, Noritake no Mori)을 개장했다. 붉은 벽돌 건물군은 미술관, 회사 역사관, 박물관, 전시 및 판매장, 체험장 등으로 이용하고, 굴뚝은 높이를 낮춰 보존하고 도자기를 구워내던 가마터도 남겼다. 철거한 건물에서 수거한 벽돌은 전시 벽으로 변화했다. 집단의 기억을 소소하게 남긴 예이다.

노리다케 공원을 생각하며 삼덕공원을 보자. 이곳은 인쇄용지 제조 공장이 있었다. 기증자는 삼덕제지의 상징인 공장 굴뚝을 보존하며 시민공원으로 만들 것을 제안하며 공장 터를 안양시에 기증했다. 2003년 7월이었다. 그러나 2005년 5월에 굴뚝이 철거됐다. 인쇄용지를 만들던 굴뚝은 옛 기억을 남기며 지역의 장소성을 살린 것이라면 새로 만든 굴뚝은 조형물일 뿐이다.

물론 이 일대는 주차 전쟁이 심한 곳이다. 주차 해결은 현실이다. 주차난을 해소하고 공원까지 생기면 좋았을 것이다. 논란을 만들며 주차계획을 세우고 새 굴뚝을 만들었지만, 지하 주차장 건립은 지지부진하다. 본보 2017년 4월 27일 기사를 참고하면, 아직도 안양시는 지하 주차장을 추진 중이다. 오고 가는 사람이 이만 명이 넘고, 인근 점포가 천여 개가 있는 전통 시장에 더욱 활기를 주려면 주차하기 편한 곳이어야 할 것이다. 현실을 버리고 지역 장소성을 말하며 문화 살리기를 떠들기는 공허할 뿐이다. 좀 더 생각을 공유하고 더불어 계획하는 절차가 필요할 것이다.

삼덕제지 굴뚝을 보고 있으니, 2004년에 ‘경기도 근대문화유산 조사 및 목록화 보고서’를 조사할 때 봤던 공장 터가 생각난다. 그해 7월에 조사할 때 평촌동 아파트 단지 앞에 있던 동일방직 정문과 경비실이다. 남기려고 한 것은 아니고, 어쩌다 남아있던 것이었다. 정문과 경비실의 건축적 의미나 가치보다 1980년대까지 안양 동부지역이 수많은 공단의 흔적이었다. 당시 인터뷰에 상업시설을 만들 것이라는 기록이 있다. 확인해보니 동일방직 정문과 경비실은 없어지고 흔히 볼 수 있는 근린상가가 생겼다. 이제 아파트가 즐비한 신도시일 뿐이다. 아파트 입구에 옛 흔적을 남겼다면 생뚱맞았을까?

과거의 기억을 남기려는 생각은 낭만일 뿐일까? 도시가 처한 상황에 맞춰 지역 역사를 살린 도시 만들기가 필요하다. 눈에 보이는 건축물뿐 아니라, 길, 필지 조직, 집단의 기억을 되살리는 것 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 지역 문화가 연속하는 도시는 정체성과 장소성이 살아나 동네를 사랑하는 주민의 감성을 북돋울 수 있다. 집단 기억을 상기하며, 문화적 자긍심과 공감대를 갖는 특별한 공간이 생겨나길 바란다.

이현정 건축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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