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학교 설립을 도와달라며 장애인 자녀를 둔 학부모가 무릎을 꿇었다는 뉴스를 보면서, 지난 2014년 4월 16일 발생했던 세월호 참사의 어느 한 장면이 떠올랐다. 체육관을 찾은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무릎을 꿇고 제발 아이를 구해달라고 울며 애원하던 어느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무릎꿇은 어머니의 모습과는 달리, 의미를 알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어머니를 내려다보던 박 전 대통령의 모습이 나에게는 매우 복잡한 의미로 다가왔다. 그 당시 대통령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지금도 몹시 궁금하다. 속마음을 내보이지 않았던 당시 대통령에 비하자면, 이번 특수학교 설립과 관련해서 무릎을 꿇은 학부모에게 노골적으로 야유를 퍼부었던 지역 주민들은 차라리 솔직한 편이었을까? 비정하고 잔인하기는 박 전 대통령이나 지역 주민들이나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그보다 더 마음이 아팠던 것은 자식을 위해 무릎까지 꿇게 만든 참담한 현실이었다. 참사로 아이를 잃은 것이 죄가 아닐진데, 장애인 자녀를 둔 것이 잘못이 아닐진데, 어쩌다가 이 두 어머니는 무릎까지 꿇어야만 했던 것일까?

학생들의 이익과 권익을 대표하는 자율적 결사체가 존재했다면, 장애인들을 강하게 조직하는 단체가 있었다면, 그리고 그 결사체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강한 정당이 있었다면, 과연 장애인 자녀를 둔 어머니가 비참함을 감수하며 무릎까지 꿇어야 하는 상황이 왔을까? 필자는 분명히 달랐을 것이라고 본다. 저 어머니가 혈혈단신으로 온갖 모욕을 감수하며 눈물로 호소하는 비극적 상황이 오기 전에, 수많은 자율적 결사체들과 정당들이 우리 학생들과 장애인들의 학습권을 위해 문제제기를 하고 사회적 공론의 장을 통해서 이 문제에 대해 논의했더라면, 어머니는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있었고 특수학교 설립 문제도 훨씬 잘 풀렸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도 마찬가지다. 어머니가 대통령에게 무릎을 꿇고 애원하기 전에, 수많은 학생단체와 정당들이 강력하게 정부에 문제제기를 할 수 있었다면 더 많은 학생들을 늦기 전에 구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한 개인이 사회적 협력과 연대의 울타리 밖으로 떨어져 나가 버리면, 그 나약한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수많은 각자가 서로 연대하고 협력하는 동시에 그에 기반한 다양한 결사체들이 존재하고, 그러한 개인과 결사체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능력 있는 정당이 존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좋은 정치의 기본이다. 그리고 그러한 좋은 정치가 존재해야만, 시민 각자가 개개인의 소중한 삶을 지키면서도 주권자로서의 권위를 잃지 않을 수 있다. 현대 민주주의에서 시민 개인은 결코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 때부터인가 시민들은 각자 개개인이 필요로 하는 것이 있으면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시장 등에게 직접 호소하기 시작했다. 인터넷 홈페이지나 SNS에 글을 남기거나 문자를 보내는 식이다. 시장이나 대통령도 자신들에게 할 말 있으면 홈페이지에 글을 남기라고 한다. 정당과 결사체를 중심의 민주주의 원칙을 언급하는 것은 이제 보기 힘들다. 시민들은 필요한 게 있으면 글을 남겨서 읍소하고 시장님의 답변을 기다리는 개별 민원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존재가 되어 버렸다. 이것을 과연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을까? 차라리 군주정에 가깝다. 왕에게 엎드려 “불쌍히 여겨주소서!”라며 읍소하는 중세 시대의 신민(臣民)과 별반 다르지 않다. 시민들의 삶과 함께 호흡하며 활동하는 결사체가 부재하고, 따라서 정당들도 그 사회적 기반이 허약하고, 그러다보니 중앙이건 지방이건 가릴 것 없이 정치는 늘 시민들의 삶과는 동떨어진 세상으로 멀어지고 있다. 이 악순환의 사이클은 계속 반복되고 있고 여전히 어딘가에서 어느 누군가는 비참함을 참아내며 무릎을 꿇고 있을지도 모른다.

시민들을 조직하고 대표하는 강력한 기반이 만들어지지 않는 한, 아무리 개헌을 하고 주민들의 직접 참여를 독려한답시고 돈을 막대하게 쓴다 한들 그 한계는 명확할 수 밖에 없다. 그 어떤 것을 하기 전에, 먼저 시민들의 권익을 대표하는 다양한 결사체와 정당의 기반을 튼튼히 하는 것이 우선이다. 화려하지 않더라도 원칙대로 반석 위에 하나씩 공들여 쌓아올린 집이 튼튼한 법이다. 모래 위에 쌓은 집은 그것이 제아무리 화려하고 아름다워도 결국은 무너질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유병욱 수원경실련 정책부장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