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 남짓 지나면 정부예산안이 국회에 제출된다. 촛불혁명과 장미대선으로 출범한 문재인정부의 2년차 예산이다. 문재인표 경제정책의 본격화와 더불어 재정운용방향의 특색이 담겨져야 한다.

하지만 보수와 진보 양측은 소득주도성장의 효용성을 둘러싼 공방이 한창이다. 세상은 21세기 모바일 초연결 사회를 거쳐 인공지능(AI) 시대로 접어들었는데, 1980년대 경제학 교과서를 논하며 날선 주장들이 오가고 있다. 괴테의 표현을 빌어 ‘모든 이론은 회색이고, 영원한 건 국민의 삶’이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다.



혹자는 과학은 불확실성과 무지를 인정하는 태도에서 출발한다고 했다. 이론에 대한 맹신과 독선적 태도가 경제를 망친 사례는 많다. 작은 정부와 긴축, 국가채무와 균형재정이라는 신화가 대표적이다.

지금은 작지만 큰 정부가 필요하다는 분위기다. 민간의 창의를 옥죄는 규제는 덜하고, 국민을 보호하는 복지는 더해야 한다. 관리간섭을 줄인 작은 정부이되, 재정지출은 늘어난 큰 정부가 어울린다. 각주구검의 오류처럼 현실이라는 강물은 끊임없이 흐르고 변하는데, 신발 빠진 곳에 푯대만 세운다면 푯대는 지킬 수 있어도 신발은 못 건진다.



가계부채와 국가부채도 차원이 다르다. 재정은 당면한 시기 국가적 문제해결과 재원조달 방법에 대한 사회적 합의다.

소득주도성장이 불거진 이유는 뭔가. 신자유주의와 금융위기로 인한 심각한 양극화 문제가 배경이다. 반면 GDP대비 사회지출 예산의 비율은 10% 수준으로 OECD 평균인 20%의 절반에 불과하다. OECD 꼴찌인 남녀임금격차, 세계최고 수준의 저출산과 노인빈곤 및 자살률은 국가의 실패인 것이다.



가계의 가처분소득 증가를 위해서는 국민행복을 짓누르는 주거비, 교육비, 교통비 등 비용부담의 고통을 국가가 해소해줘야 한다. 그러나 ‘지속가능한 복지’를 위해서는 재정만으로 불가능하다. 특권층 감세의 정상화를 비롯한 보편적 증세가 불가피하다.

혁신성장과 공정경제 또한 고통스러운 경제구조의 개혁을 요구한다. 정부도 신산업 창출의 마중물 역할에 그쳐서는 안 된다. 중소협력업체와 공기업 및 재벌대기업 간의 임금격차를 줄이고, 실업안전망과 재취업교육을 내실화하기 위해서는 좌우 경제적 기득권 포기를 이끌어내야 한다.



고정불변의 이념, 선악정사의 태도가 아닌 실사구시의 현실, 이용후생의 관점, 실용주의 정신이 필요하다. 포스트 케인지언이던 네오 슘페터리언이던 민생경제만 살릴 수 있다면 어떤 것도 좋고 그 무엇도 나쁠 수 있다. 이론 자체가 그르기 때문이 아니라 적용한 당대에 적실하지 못하다면 말이다.

소확행과 워라밸, 국민들은 과연 어떤 복지국가, 어떤 혁신국가를 원하는가. 국가 미래비전을 디자인하는 기획재정부의 기획기능이 강조되는 이유다. 또한 스웨덴의 국민의 집, 미국의 뉴딜, 독일의 사회국가, 모두 정부와 정당, 사회계층 간 합의의 산물이다. 민주당 최초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을 맡으며 고민이 떠나질 않는다.



정부여당은 국가와 국민에 대한 무한책임이 있다. 그런 점에서 정부정책이 대선공약에 교조적으로 얽매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특히 SOC를 죄악시하는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공기업을 공공성이 아닌 효율성 잣대로 보던 지난 보수정권의 태도와 다를 게 없다.

SOC도 교통복지다. 경기북부 등 교통인프라가 부족한 지역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물론이고, 노후공공시설물의 안전문제도 심각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SOC 투자의 급격한 축소는 우리세대가 누린 인프라 부채를 미래세대에 전가시키는 일이다.



오히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21세기 형 뉴딜, 메가 프로젝트를 모색할 때다. 과거 4대강 등 단순토목사업이 아닌 4차 산업혁명과 연계된 아이템을 발굴해야한다.

특히 신경제지도의 환황해권과 환동해권을 연결하는 DMZ 횡단고속도로를 제안한다. 자율주행과 지능형 교통체계가 결합된 스마트 고속도로를 조성하고, 수소·전기차가 다니면 국제 관광명소로 떠오를 것이다. 남북경협에 대비한 남북종단 고속도로(남북 3축)의 추가 건설도 필요하다. 서울도심을 지하로 관통하여 세종시까지 연계시키는 건 어떤가. 지금 시작해도 개통은 10년 뒤다.


정성호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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