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주도 성장론에 기반한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인 이른바 ‘J노믹스’의 무게중심이 혁신성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 등의 정책 부작용이 심화되고, 경제성장률 하락과 일자리 급감 등의 현실적 문제에 직면하면서 분배 및 사람 중심의 투자로부터 기존의 물적 투자 및 규제 완화를 통한 성장으로 경제정책의 방향을 선회하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기에 소득주도성장과 공정경제, 혁신성장을 함께 이루는 ‘세 바퀴 성장론’을 앞세워 경제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최저임금 인상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이 소득주도 성장론의 주요 정책이었다면, 혁신성장과 관련해서는 중소기업 네트워크화 지원 정책을 강조했다. 혁신성장의 방향이 대기업-중소기업 간 격차를 줄이고 중소기업간 수평적 협력을 강화해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었지만, 진척이 더딘 상황이다.

최근 들어 신성장산업을 육성한다는 계획 하에 규제혁신 5법(행정규제기본법, 금융혁신지원법, 산업융합촉진법, 정보통신진흥법, 지역특구법)을 중심으로 규제혁신을 통한 성장 전략이 속도를 내고 있다. 또한, 지난 연말 엘지(LG)를 시작으로 현대차, SK, 신세계, 삼성 등 재벌 대기업 현장방문을 통해 투자 및 고용 확대를 독려하고 있다.

정부 정책에 대한 보수 진영의 불만이 여전한 가운데, 진보진영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이와 같은 정책 선회 전략에 대해 사회·경제적 개혁 의지가 후퇴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정부 혁신성장의 행보가 대기업 규제 완화를 통한 투자 유인처럼 과거 정부가 답습해온 정책으로 회귀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강하게 제기한다. 또한 금산분리(금융과 산업의 분리)와 은산분리(산업자본의 은행지분소유 제한) 등 기존 재벌개혁 차원에서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을 잠식해 시장질서에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지켜왔던 원칙들이 무너지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표명한다.

소득주도 성장의 정책적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근본적 원인은 불공정 경제 제도에 있음이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영세 상공업자들의 어려움은 불공정 하도급 계약과 임대료 인상 등 안정적 사업 운영을 방해하는 구조적 요인들이 더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의 본질인 대기업과 프랜차이즈업계의 갑질을 외면한 채, 문제의 피상에 불과한 을끼리의 경쟁에만 주목하는 지금의 최저임금 인상과 소득주도 성장을 둘러싼 논쟁이 참으로 안타깝다.

문재인 정부는 그동안 소득주도성장을 기존과는 차별화된 정책으로 강조해 왔으나, 소득주도 성장의 효과가 단기간 내에 나타날 것을 기대하기란 불가능하다. 뚜렷한 소신과 분명한 원칙을 가지고 경제정책을 운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소득주도성장론의 경제 성과 미흡에 대한 세간의 비판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정치적·정책적 역량이 부족한 점이 가장 큰 문제이다. J노믹스의 핵심 축은 소득주도 성장과 공정경제에 있어야 한다. 물론 성장이 뒷받침되지 않는 분배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따라서 혁신성장의 축이 균형있게 작동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혁신성장으로 무게중심의 축을 급선회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동안 간과되어 왔던 공정경제를 바로 세우기 위한 전략이 시급한 때이다.

그렇다고 해서 재벌개혁을 강하게 추진하면서 이들을 적대시할 것인가? 대기업 위주의 경제구조에서 상대적으로 위축됐던 중소·벤처기업의 비중을 키워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하겠다는 것은 바람직한 전략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경제활동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은 중소·벤처기업 위주 정책으로는 혁신성장으로 이어질 파급력을 기대하기 힘들다. 따라서 대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유인하고, 대기업과 중소벤처기업이 함께 상생할 수 있는 공정하고 혁신적인 경제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문재인 정부의 J노믹스는 이명박 정부의 동반성장 및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기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용어만 상이할 뿐, 사실상 정책적 내용은 유사하기 때문이다. 전임 정권들과의 차별성만을 강조하기 보다는, 정책의 연속성을 고려하되 합리성이 담보된 지속가능한 경제정책 구현을 기대해본다.

김선희 서원대 행정학과 교수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