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권위’라는 말은 여전히 부정적인 뉘앙스로 많이 사용된다. 소위 말하는 ‘권위주의 독재정권’ 시절의 흔적이 여전히 잔존하기 때문이다. 필자도 이런 영향으로 인해 ‘권위’라는 말에 대해서 부정적이었지만,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권위’는 ‘어떠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나 위상’ 정도로 정의할 수 있다. 어떤 집단이든 그 것을 이끌어 가는 리더는 존재하게 마련이고, 그에게 적절한 권위와 권한이 주어지지 않으면 그 집단은 제 역할을 감당하기 어렵다. 다시 말해, 옳고 그르고를 따질게 아니라 권위를 인정하고 잘 활용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는게 현실적인 최선이라는 의미다.

권위를 가진 사람은 그 권한과 역할에 맞게 의무도 주어진다. 권위를 가진 자가 그 의무를 소홀히 하거나 방기한다면, 그는 자신의 권위 아래 있는 사람들에 의해 언제든 탄핵을 당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권위자에게 주어진 의무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필자는 ‘책임있는 설명의 의무’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내용은 간단하다. 권위를 가진 자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 그 권위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 책임있게 설명해야 한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이 의무는 대단히 중요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이 ‘설명의 의무’를 지키지 않아서 ‘불통 대통령’으로 낙인 찍혔고, 이는 탄핵으로까지 이어진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

비단 정치 영역뿐만이 아니다. 생명을 다루는 의사도 권위를 갖는다. 하지만 자신이 권위를 가지고 있다 해서 설명의 의무를 저버린다면 그 의사는 권위를 인정받지 못한다. “내가 다 알아서 하겠다”라고만 말하는 의사를 우리가 신뢰할 수 있을까? 의사의 권위는 그가 자신의 의료 행위에 대해 환자에게 세심하게 책임감을 가지고 설명할 때 성립된다. 요컨대, 어떤 분야건 권위를 행사하려면 반드시 그 행위에 대한 책임있는 설명이 뒤따라야 한다.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경기도는 올해 1월 경기도 공항버스 한정면허 노선을 더 이상 발급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기 노선을 시외버스 노선으로 전환 하겠다고 밝혔다. 명분은 “한정면허 노선을 시외버스 노선으로 전환하면 요금을 인하할 수 있기 때문에 도민들에게 이익”이라는 것이다. 필자가 속해 있는 경실련은 이와 관련해서 경기도의 행정을 규탄하는 성명서를 발표한 바 있다. 당장 우려되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있지만, 여기서는 논외로 하겠다. 다만 앞서 ‘권위’와 ‘설명의 책임’에 대해 언급했던 바, 이와 관련해서 이야기 하겠다.

경기도와 남 지사는 한정면허 공항버스의 요금이 지나치게 비싼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하지만 한정면허 공항버스의 요금은 그동안 경기도에서 최종 결정해 온 사안이다. 간략히 그 과정을 설명하자면, 한정면허 업체는 요금을 책정해서 경기도에 보고한다. 그러면 경기도에서 이 내용을 검토한 뒤 ‘경기도소비자정책심의위원회’에서 최종 결정한다. 즉, 그동안 한정면허 공항버스 요금은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경기도가 최종 결정해 온 것이다.

경기도가 이제 와서 한정면허 공항버스 요금을 문제 삼으려면, 먼저 그동안 경기도가 해온 행정 행위에 대한 책임있는 설명이 선행되어야 한다. 경기도가 문제삼는 그 요금을 그동안 경기도가 결정했기 때문이다. 과거의 행정 중 뭐가 문제였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비싼 요금이 문제라면서 그동안 경기도는 왜 두 손 놓고 가만히 있었던걸까?

요금 인하해 준다는데 뭐가 문제냐는 사람들도 있다. 맞다. 요금 인하하면 이용자들은 좋다. 그걸 부정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그게 경기도가 책임있는 설명의 의무를 외면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그냥 요금 인하만 되면 좋은걸까? 도민들의 대표 기관인 경기도가 도민들에게 책임있는 설명의 의무를 망각하고 있는데 그냥 넘어가도 되는걸까? 도지사와 경기도에 책임있는 설명을 요구하는 것이 과연 부질없는 짓일까?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있는 설명을 하지 않는 도지사와 경기도에 1천300만 도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맡길 수는 없다. 남지사와 경기도는 이제라도 제대로 설명해 주기를 바란다. 그동안 공항버스 요금과 관련하여 경기도가 해온 행정이 뭐가 잘못이었는지 말이다. 요금 인하라는 그럴 듯한 명분만 내세운다고 해서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유병욱 수원경실련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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