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에 달인 오월, 특히 5월 5일 ‘어린이 날’이면 박상옥을 떠올리게 된다. 그는 어린이를 참 많이 그렸다. 그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이 그림 ‘한일(閑日)’에도 나타나듯이 그의 그림의 주인공들은 어른이 아닌 어린이들이었다. 우리의 역사에서 어린이들이 존중받는 대상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던 것은 근대기 방정환(1899~1931)이라는 인물에 이르러서였다. 그전까지 어린이들은 ‘장유유서’라는 두터운 유교사상의 덮개 속에서 어른과 비교하여 어리석은 존재, 미성숙한 존재, 단지 노동력을 제공하는 존재로서만 인식되었다. 그런 대상에게 ‘어린이’(1920년)라는 명칭을 부여하고 ‘어린이 날’(1922년)을 제정하고 ‘아동권리선언’(1923년)을 발표하며 아동문학의 영역을 개척하였던 이가 방정환이었다.

▲ 박상옥, 한일, 1954년, 캔버스에 유채, 112x199cm

방정환과 비교하여 박상옥은 문학이 아닌 미술의 울타리 안에서 어린이를 표현하였다. 박상옥은 1915년 서울에서 태어나 성장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에 있는 일본 데이코쿠미술학교(帝國美術學校) 사범과를 1942년에 졸업하였다. 사범대학을 택했다는 것은 교육자로서의 꿈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실제로 해방 이후에 박상옥은 대구사범학교, 경기고등학교의 교사, 후에는 서울교육대학 교수로 활동했다. 즉 그의 주변에는 언제나 어린이들 혹은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교육자들이 있었던 셈이고 박상옥은 그런 환경 속에서 어린이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렸다. 예술가로서의 자취 또한 매우 또렷했다. 1949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특선을 받은 후로 연거푸 특선을 수상했던 박상옥은 1954년에는 국전 최고상인 대통령상을 바로 이 작품 ‘한일’로 받게 되었다.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구상화가로 분류되고 본인도 프랑스의 사실주의 화가인 쿠르베의 영향을 숨기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쿠르베처럼 박상옥은 거창한 주제를 지닌 역사화나 신화적 소재의 극적인 형상화를 그린 것이 아니라 그의 일상을 구성하는 담담하고 정감 넘친 생활의 단면들을 그의 작품의 주요 소재로 삼았다. 향토적인 풍경을 배경으로 뛰어 노는 어린아이들의 모습과 자연물과 교감하는 어린 아이들의 따뜻한 정서는 자연스럽게 박상옥 작품의 주제가 되었다. 


‘한일’에는 모두 6명의 어린이가 등장한다. 박석을 박아 넣은 토담 안쪽의 마당에서 어린이들이 토끼와 노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아이들은 토끼와 토끼장을 중심으로 타원형의 구도 속에 들어가 있다. 대문에는 ‘입춘대길’이라는 봄을 맞이하는 문구가 쓰여 있으니 마당 한 쪽에 서있는 나무에도 새순이 돋고 꽃이 필 것이다. 아이들은 마당에서 이른 봄을 느끼며 토끼와 놀고 있는 것이다. 그늘 속에 숨어 있는 겁먹은 토끼 한 마리도 곧 양지쪽으로 나올 것이다. 어린아이들의 순수한 동심이 소박한 이 한 장의 그림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최은주 경기도미술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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