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0년(영조 36) 12월 채제공은 경기 관찰사에 임명됐다. 7년 전인 1753년(영조 29) 호서지방 암행어사에 임명돼 균역법 시행 요건을 조사하고 보고한 것에 감동을 받은 영조는 그로 하여금 조선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인 경기도를 책임질 관찰사로 임명하였다. 노론의 지원을 받아 국왕이 된 영조는 영남 남인들의 쿠데타로 커다란 위기를 겪었던 터라 남인 출신의 등용을 꺼렸는데, 채제공만큼은 합리적 행정능력을 높이 사서 그가 남인계열임에도 불구하고 총애 했다.

채제공은 국정 운영에 있어 자기 당파의 이익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행정을 책임지는 사람에게 오로지 백성만이 있을 뿐이지 당파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영조가 원하는 ‘탕평’의 의지가 높았던 것이다. 그는 이러한 마음을 ‘서회(書懷)’라는 시에 담았다. “내 몸은 서남노소국을 벗었고(身脫西南老少局), 내 이름은 이예호병 반열을 뛰어 넘었네(名超吏禮戶兵班)” 채제공은 이 시를 통해 서인, 남인, 노론, 소론이라는 당파적 굴레를 벗으려 했고, 조정에서는 이부, 예부, 호부, 병부니 하는 직책마저 뛰어넘어 나라와 백성을 위한 일이라면 뭐든지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채제공은 경기 관찰사로 임명되기 1년 전 지금의 대통령 비서실장 격인 승정원 도승지에 임명돼 영조를 보필하면서 “언로(言路)를 개방해 백성들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국왕에게 바른 말을 전하는 채제공에 대해 영조는 더 많은 관직 경험을 쌓게 하기 위해 대사헌으로 임명했다. 강직한 채제공이 개인적인 인연 때문에 탐관오리들의 잘못을 묵인하는 일은 전혀 없을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오늘날 검찰총장의 자리와 같은 대사헌은 막강한 자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채제공은 자신의 권력을 드러내지 않고 오로지 정의롭게 행동했다. 이와 같이 국가의 가장 중요한 직책들을 역임한 채제공에게 영조는 마침내 경기 관찰사의 직분을 맡긴 것이다.

관찰사(觀察使)는 감사(監司), 방백(方伯), 도백(道伯) 등으로 불렸는데 경기 관찰사는 경기도의 최고 수장으로서 경기감사(京畿監司) 또는 기백(畿伯)이라고도 불렸다. 국왕의 직계권을 부여받아 국왕(중앙)과 지방을 잇는 유일하면서도 확고한 자리로 조선시대 전국 8도에 파견돼 행정, 사법, 군사, 치안에 대한 포괄적인 책임권을 가진 중요한 자리였다. 경기도는 왕실과 중앙정부가 위치한 수도를 둘러싼 지역이고, 왕실의 능묘와 고관대작들의 분묘가 많았다. 또한 8도 중 가장 큰 도였으며 외교, 국방상 중요한 지역이므로 경기관찰사의 임면(任免)에 매우 신중을 기하였고, 역대 집권세력이 중시한 자리 중 하나였다.

채제공은 경기 관찰사가 되자마자 곧바로 안산의 성호 이익(李瀷)을 찾아갔다. 조선의 대학자이자 ‘사대부와 농부는 하나다(士農合一)’라는 실학사상을 가지고 있던 이익을 찾아가 인사를 하고 제자로 받아주기를 간청했다. 이는 경기 관찰사로 임명된 자신이 실학적 사고와 행동으로 백성들을 위한 일에 전력을 다하겠다는 의미였다. 성호 이익으로부터 조언을 구한 채제공은 경기지역 전체를 돌아다니면서 백성들의 실제 삶을 정확히 이해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합리적 행정을 주도했다. 역사에서 채제공은 오리 이원익 이후 최고의 관찰사로 평가 받는다.

민선 7기 동시지방선거가 본격화되면서 경기도지사의 선거 또한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이번 경기도지사 선거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자유한국당 남경필 후보의 양자 대결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경기도는 잘 알다시피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다. 경기지역은 남북의 접경지역이기도 하지만 수도권의 핵심이다. 인구 역시 1천200만여 명에 이르러 서울특별시를 뛰어넘은 지 오래 됐다. 조선시대 실학의 산실이자 개혁 사상을 기반으로 성장한 경기도는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앞으로 세계의 중심지로 성장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기도지사는 매우 중요한 자리이다. 현명한 유권자들이 우리의 미래를 책임질 경기도지사를 신중하게 선택할 것으로 믿는다. 이번에 당선되는 경기도지사는 조선 최고의 경기도백이었던 채제공의 개혁사상과 합리적 행정의 실천을 계승하는 분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김준혁 한신대학교 정조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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