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가계가 저축과 부채가 동시에 증가하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 여유자금과 소비는 역대 최소치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주택가격을 부담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분석이다.

4일 한국은행(한은)이 발표한 ‘조사통계월보 3월호’와 ‘2017년 중 자금순환(잠정)’에 따르면 2002년 1.0%였던 가계저축률은 2016년 8.1%까지 급등, 2000년대 이후 최고 수준을 보였다.

반면, 지난해 가계 순자금운용액(69조9천억 원→50조9천억 원)은 전년 대비 19조 원이 감소했다.

이는 2009년 관련 조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적은 수치다.

순자금운용은 가계가 예금, 채권, 보험, 연금 등으로 운용하는 자금 중 금융기관 대출 등 부채를 뺀 금액이다.

가계가 저축으로 형성한 보유자금의 상당분을 주택 구입에 활용, 역대 최고 수준의 저축률과 역대 최저치의 자금보유량을 동시에 보인 것이다.

지난해 가계의 금융기관 예치금(108조5천억 원→92조6천억 원)은 전년 대비 15% 감소했다. 가계가 갖고 있던 예금을 깨 주택 구입에 썼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한은 관계자는 “지난해의 경우 저금리 기조 유지와 부동산 규제 풍선효과 등 요인으로 신규 주택 구입 규모가 증가, 순자금운용 규모는 상당 폭 축소됐다”고 설명했다.

저축과 자산 증가에도 불구, 소비는 계속 위축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 자금 마련 과정에서 저축과 함께 부채가 동반 상승한 부담 때문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이후 신규 부동산을 사들인 가계는 전체 가계 평균보다 소비성향이 1∼2%p 더 낮았다.

가계의 보유 실물자산(주택)이 많이 증가한 2016년의 경우 격차가 2.4%p까지 벌어졌다.

한은은 “소비회복과 부채 감소를 위해서는 주택가격 안정화와 주택구입 부담 경감 정책이 수반돼야 한다”며 “장기적으로는 양질의 공공·민간 임대주택을 확대해 가계가 직접 주택을 매입하지 않아도 안정적인 주거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황호영기자/alex1794@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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