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Me Too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모든 성범죄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반드시 남성과 여성으로 규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의 결과를 보면 상당수가 이 경우에 포함된다. 그러다보니 같은 여성이면서 인생의 선배로서 최근의 이 상황을 바라봐야 하는 마음은 여간 복잡한 게 아니다. 이제라도 어느 정도의 진실이 밝혀지는 게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그동안 고통 받아왔을 피해자의 상황에 마음 아프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이로 인해 이중, 삼중의 또 다른 피해를 당하지는 않을까 염려스럽기도 하다. 실제로도 인터넷에는 피해자를 공격하고 몰아붙이는 어처구니없는 댓글이 상당수 있어서 분노케 한다.

가해자로 지목되는 사람들은 종종 ‘강압은 없었다’는 말을 하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지위나 권력 그 자체가 피해자에게는 강력한 위압이다. 어떤 사람이 지닌 사회적 지위나 명예는 종종 평소 그 사람의 인격과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힘을 지닌다. 그래서 평소 자신이 존경하고 믿었던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요구를 해 올 때, 대다수의 피해자는 혼란스런 상황에서 머뭇거리는 태도를 취할 수 있다. 이 머뭇거림을 두고 가해자들은 자주 ‘합의’라는 표현을 한다.

심지어 ‘아니오’라고 말을 해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과거에 자주 들었던 말 가운데 ‘여성의 아니오는 아니오가 아니다’, 또는 ‘여성의 아니오는 예스라는 뜻이다’란 말이 있다. 그러면 여성은 어떻게 ‘아니오’를 표현해야 할지 의문이다. 모두들 은장도 하나씩 가슴에 품고 다니면서 자해라도 해야 하는 것일까? 아무리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이기 때문에 서로의 의사소통방법이 다르다고는 하더라도, 상대가 말하는 팩트조차도 자기 편할 대로 해석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그런가 하면 여기에 대응하는 태도 또한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 최근의 미투 열풍에 다수의 기관이나 조직은 나름대로의 대응책을 세우기도 한다. 그래서 구성원들에게 이러저러한 지침(?)을 알리는 내용을 전달하곤 하는데, 그 가운데는 가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내용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가해자에게 상담을 권유한다든지, 피해자에게 대외이미지 운운하는 것은 하나같이 가해자의 입장에 서는 것이다. 이것은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고 피해자에게는 아픔을 혼자 감내하도록 강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미투 운동의 본질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의 조직이 무사하기만을 바라는 안일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조직의 정상화를 생각한다면 SNS에 게시가 되고 공개가 된 사안에 대해서만 조처를 취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해자의 커밍아웃이라도 유도해야 할 판이다. 그래서 가해상황, 또는 피해자의 피해상황을 전수조사를 해서 그에 따른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할 것이다. 이어 향후에 또 다른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더 이상의 성범죄 희생양이 나타나지 않도록 사전에 예방해야 한다. 더 이상 방치하면 어느 순간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이 피해자가 될 수도 있음을 직시하고,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들은 종종 ‘사랑’을 주장하기도 한다. 또는 상대가 먼저 자신을 좋아했다며 책임을 전가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 상대가 자신보다 사회적 약자라면, 아직 미성숙한 사회초년생이라면, 설령 상대가 먼저 유혹(?)을 한다 하더라도 그래서는 안 된다. 설득을 하든, 타일러서라도 거절해야 한다. 예컨대, 어떤 학생이 내게 자신들만의 이벤트에 나를 초청한다고 했을 때, 무조건 참석하지는 않는다. 다른 학생들과의 형평성도 생각하고, 이벤트 성격의 적절성 여부도 따져본다. 그래서 여의치 않으면 완곡하게 거절한다. 그렇지 않고 문제가 생겼을 때, ‘학생들이 먼저...’라고 말 한다면 얼마나 무책임한 교수인가.

물론 억울하게 가해자로 지목되어 곤혹스런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어처구니없게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성범죄는 갑질의 다양한 형태 가운데 하나이다. 상대의 인격을 존중한다면,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미투 운동이 단지 피해자의 폭로와 가해자의 처벌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지금의 미투운동은 사람은 누구나, 나이의 많고 적음이나 지위고하(地位高下), 성별 등과 무관하게 하나의 인격체임을 인식하는 사회적 계기가 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는 하나의 인간으로써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이것을 제대로 인식할 때 비로소 억울한 성범죄 피해자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

김상진 한양대학교 한국언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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