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3박 4일 일정으로 일본 큐슈의 사가현에 다녀온 적이 있다. 내가 회장을 맡고 있는 학회에서 주최한 국제학술대회가 사가단기여자대학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사가는 큐슈에서 비교적 규모가 작은 현으로 한국인들에게 그다지 유명한 곳이 아니다.

사가가 워낙 외진 곳이라는 말을 들어서 한국인들이 얼마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공항에 도착해 보니 그렇지가 않았다. 공항은 한국인들로 붐비고 있었다. 젊은이들보다는 주로 아저씨, 아주머니들로 짜여진 패키지 관광객들이 많이 보였다. 우리야 일이 있어서 여기에 왔지만 이 많은 아저씨, 아주머니들은 이곳에 무엇을 하러 왔을까 몹시 궁금하였다. 방문의 목적이 무엇이든 일본의 작은 시골 공항에 입국 심사를 기다리는 한국인 수가 이렇게도 많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나는 일본이 한국에서 비행기로 1시간 30분 남짓이면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점이 우리에게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여행의 가성비 때문이 아니다. 일본이 선진국이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서양 어디를 가든 세계 일등 시민으로 대접을 받는다. 유감스럽지만 한국인은 그렇지 못하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권 국가 중에서 서구인들로부터 일등 시민 대접을 받는 나라는 일본이 유일하다. 우리나라 사람이 비행기를 타고 일본 외의 다른 선진국을 여행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10시간 이상의 비행을 해야 한다. 쉽게 갈 수가 없는 것이다. 비용도 만만치가 않다. 인천 공항에서 미국의 서부 LA까지는 최소한 10시간 40분이 소요된다. 캐나다의 벤쿠버 공항까지 가기 위해서는 대략 13시간 정도 비행기를 타야 하며, 혹 연착을 밥 먹듯이 하는 에어 캐나다를 이용하게 되면 그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유럽으로 눈을 돌려 보자. 한국에서 파리까지는 대략 12시간이 걸리며, 런던까지는 12시간 20분 가량이 걸린다. 다른 유럽 국가들도 다들 이 정도 시간이 소요된다. 유럽에 갈 때 경유하는 비행편을 이용하게 되면 최소 24시간을 각오하고 타야 한다. 그러니 세계 일등 시민이 살고 있는 나라가 우리와 엎어지면 코 닿을 데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 행운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아직도 선진국으로부터 배워야 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일본을 방문하는 관광객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젊은이나 노인을 막론하고 또 아저씨나 아주머니를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것도 자주 일본을 방문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꽤 오래 전 일이다. 나는 캐나다에서 가족들과 함께 1년간 머물렀던 적이 있다. 그때 내가 캐나다 생활을 정리하고 돌아와서 제일 많이 달라진 것은 운전 습관이 아닌가 싶다. 캐나다 사람들로부터 운전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를 배웠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한, 캐나다는 행인이 눈을 감고도 안심하고 길을 건널 수 있는 나라다. 지난 여름, 나는 가족들과 함께 일본 벳푸에 다녀왔다. 처음으로 차량을 렌트해서 시내도 다녀 보고, 쿠마모토현에 있는 아소산까지 장거리 드라이브도 해 보았다. 일본인들의 운전 매너는 우리와 너무나도 달랐다. 교통법규와 신호를 철저하게 준수할 뿐만 아니라, 양보운전에 익숙해 있었다.

우리의 운전 문화는 사람에 적대적이고 위협적이다. 인간의 생명을 존중하는 운전 문화와는 거리가 멀다. 어디 차량뿐인가? 아무리 배달의 민족이라 하지만, 오토바이가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시민의 산책로를 달린다. 버젓이 인도를 침입하여 역주행하는 모습도 비일비재하다. 사람들의 안전은 안중에도 없다. 또 인도에 자전거도로를 같이 만들어 놓아서 사람들이 안심하고 걸을 수가 없다. 달려오는 자전거에 치여 구급차에 실려가는 모습을 한두 번 본 것이 아니다. 선진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이 땅에서는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김창원 경기대 교수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