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ck 3d gpu
바로가기
왼쪽 메뉴로 이동
본문으로 이동
닫기

민족정서 ‘흥’과 평창올림픽

2018년 02월 12일(월)
최준영

수원에는 ‘화성(華城)’이 있다. 수원사람들의 화성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은 각별하다. 그러나 자부심의 저편에 도사린 또 다른 감정도 있다. 불편함이다. 수원 구도심 도로들은 화성으로 인해 심각하게 왜곡(矮曲)돼 있다. 수원 구도심에 길게 뻗은 도로는 없다. 화성의 성문을 통과하려면 돌고 돌고 또 돌아야 한다. 과거 사통팔달을 자랑하던 교통도시 수원이 어느덧 교통지옥으로 전락한 것이다. 그런데 그게 과연 수원만의 문제일까? 시야를 넓혀서 살펴보자.

우리의 국토는 70% 이상이 산과 구릉으로 덮여있다. 편평한 평야 대신 울퉁불퉁한 구릉들이 서로의 어깨를 겻고틀고 절대 놓치지 않으려는 결연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러니 우리나라에서 일직선 도로를 기대하는 건 무리다. 엄청난 예산과 최첨단 공법을 동원해서 산을 관통하고, 산과 마을, 산과 강을 가로지르는 고가도로를 뚫고 깔고 세워야 비로소 해결되는 일이다. 그래서다. 한동안 우리는 우리의 자연환경을 못마땅해 했다.

그렇기로, 세계의 문화유산 화성과 아름다운 우리의 산야를 원망할 수는 없는 일이다. 현실론과 경제론으로만 볼 것도 아니다. 우리 국토의 지형과 경관 속에 담긴 역사적, 정서적 특성을 제대로 이해해야만 한다. 이 대목에서 한예종 교수 심광현의 주장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심 교수는 우리나라의 구불구불한 지형을 오히려 고맙게 여긴다. 다소 엉뚱하게 들릴 수 있는 그의 주장은 그러나 상당한 근거와 타당성이 있다. 심 교수는 우리나라의 구불구불한 지형을 ‘프랙탈(fractal)’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프랙탈이란 ‘작은 구조가 전체 구조와 비슷한 형태로 끝없이 되풀이 되는 구조’, 즉 자기 유사성 개념을 기하학적으로 푼 구조를 말한다. 프랙탈은 자기 유사성(self-similarity)’과 동시에 ‘순환성(recursiveness)’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산과 들이 그렇고, 우리의 전통문화가 그렇게 끊임없이 자기 유사성과 순환성을 이어왔다는 것이 심광현의 주장이다.(참고, 심광현 저 ‘흥한민국’)

프랙탈이야 말로 우리민족의 역동성과 창의성, 나아가 ‘흥’의 정서를 배태시킨 전통문화의 기반이다. 특히 우리의 전통정서가 ‘한’이 아닌 ‘흥’이라는 대목에서 절로 무릎을 치게 된다. 그동안 우리는 우리 자신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살아왔다. 이제야말로 지긋지긋한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고 우리 전통문화를 새롭게 재발견, 재해석해야 할 때다.

지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은 녹록지 않다. 트럼프 정권 들어 점차 격화되고 있는 북한핵개발을 둘러싼 북‘미간 대립과 갈등, 과거를 인정하지 않는 일본의 신군국주의 망령, 여전히 지속되는 중국과 러시아의 팽창주의 등등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 와중에 지금 우리는 평창동계올림픽을 개최하고 있다. 경쾌한 분위기와 쉼없는 춤사위, 최첨단의 예술이 어우러진 개막식부터 감동이었다. 남북단일팀이 한데 어우러져 한반도기를 들고 입장하는 장면은 보는 순간 감당키 힘든 감동을 자아냈다. 개막식의 백미는 역시 올림픽성화 점화였다. 남북단일팀 선수들이 전달해준 올림픽 성화를 백자항아리를 형상화한 성화대에 점화하는 김연아의 아름다운 모습은 한반도를 넘어 세계만방에 평화의 메시지를 타전한 것으로 해외 언론에서도 높이 평가한 장면 중 하나였다.

우리 민족의 고유정서는 ‘한(恨)’이라는 말을 귀가 닳도록 들었다. 학교에서 그리 가르치니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럴싸한 증거들도 있으니 또 그럴싸하게 들리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전통정서는 ‘한’이 아니라 ‘흥’이다. 우리는 ‘흥’이 많은 민족이다. 멀리 갈 것 없이 가깝게 기억나는 몇 가지만으로도 우리가 얼마나 흥이 많은 민족인지 단박에 알 수 있다. 2002년 월드컵 때 분출된 붉은악마의 용솟음치는 기상과 엇박자박수와 응원구호 “대~한민국”을 상기해 보라. 전 세계 대중음악을 선도하는 K팝의 위력을 떠올려 보라. 전후 반세기만에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놀라운 경제성장을 기억하라.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분연히 일어나 촛불을 들었던 1천7백만의 촛불정신을 되살려 보라. ‘한’의 민족이라는 말로는 도저히 설명하기 힘든 일이다.

흥의 민족, 그게 바로 우리민족의 저력이자 힘이다. ‘프랙탈’한 자연경관을 통해 배태된 우리 고유의 민족정기를 되새길 일이다. 평창 동계올림픽은 스포츠제전을 넘어 우리 민족의 흥과 멋과 평화에의 열망을 만천하에 알리는 일이다. 올림픽 이후 우리는 다시금 흥겨움의 기적을 이루어나갈 것이다.

최준영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