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가 황금개의 해인 무술년(戊戌年)이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부유함과 복됨의 여러 의미가 육십갑자의 해석과 만나 빚어낸 상징성이다. 황금색, 이 색은 미술의 역사에선 어떻게 쓰여 졌을까? 이집트 투탕카멘의 마스크, 중세 이콘화의 성스러운 광배, 클림트의 황홀한 장식화 등을 떠올려보면 이 색은 절대적 권위, 최상의 아름다움 혹은 불변과 영생의 매개체로서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함부로 사용하기 어려운 색이고 잘못 쓰였을 때는 오히려 천박함을 불러일으키는 역효과를 감수해야만 하는 그런 색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추상작가의 한 사람인 한 묵(韓 默, 1914~2016)이 1990년에 제작한 ‘금색운의 교차’라는 작품은 황금색의 상징성과 의미를 최대한 발휘시킨 작품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한 묵은 황금색을 우주의 공간과 그 공간에 흐르는 에너지의 진동을 표현하는데 사용하였다. 작가 자신도 이 작품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는지 작업실에서 촬영된 프로필 사진의 배경에 이 작품을 놓아두었고 그의 나이 만89세에 기획되었던 ‘올해의 작가 2003: 한묵’전 도록의 표지에도 이 그림을 사용했다.

한묵,금색운의교차
한 묵은 1960년대 말부터 수직선과 수평선, 곡선과 나선 등으로 이루어진 독창적인 기하학적 세계로 기울어져 가고 있었다. 이 시기가 한국 화단이 구상회화와 서정적 추상회화로 양분되던 때임을 상기해 본다면 한 묵의 이러한 조형실험은 매우 독자적인 것이었다. 한 묵은 어떻게 해서 이런 실험에 몰두하게 되었을까? 작가가 수십 번 언급 하였듯이 그 계기는 1969년 아폴로호의 달 착륙이라는 역사적 사건에서 비롯되었다. 1961년 프랑스 파리로 이주하여 평면적 공간구성을 답습하고 있었던 한 묵에게 아폴로호의 달착륙은 공간에 대한 인식을 우주 저편까지 확장시킨 계기가 되었다. 그는 우주 시공간의 역동성을 자신만의 조형성으로 표현해 내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혔다. 자와 콤파스를 집어 든 한 묵의 집요한 조형실험이 거듭되었고 마침내 한묵은 화면 전체가 꿈틀되며 에너지를 발산하는 기하학적 추상의 세계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의 화면은 초록색, 노란색, 파란색, 빨간색, 보라색 등의 과감한 색채의 파장으로 가득 찬 새로운 차원의 추상성을 획득하였다. ‘금색운의 교차’뿐만 아니라, ‘십자성의 교향’(1989년), ‘핵’(1989년), ‘은하계에 나타난 눈동자’(1991년), ‘황색운의 운무’(1995년) 같은 우주 현상을 소재로 한 대작들이 80세를 넘긴 화가의 손에서 계속해서 탄생했다. 한국이 낳은 기하학적 추상의 대가, 한 묵의 황금빛으로 빛나던 예술적 열정을 반추하면서 어느 해보다 빛나는 무술년을 기원해 보고자 한다.


최은주 경기도미술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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