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명이 숨지고 129명의 부상자를 낸 의정부시 오피스텔 화재 당시 119소방대가 인근 진입도로 입구 불법 주정차 차량 때문에 최초 신고 접수 후 6분이 넘어서야 현장에 도착했다.

0.5초를 다투는 불길은 소방대가 도착했을 당시 이미 건물의 벽을 뒤덮어 초기에 불길을 잡는데 실패했다. 설마 우리 동네 내 집앞에서 불이 나겠어라는 안전 불감증에서 비롯한 불법 주정차가 소방차 진입을 막아 화재 피해를 더 키운 것이다. 지자체에서 많은 예산을 들여 좁은 골목길을 소방도로로 만들어 놓으면 기다렸다는 듯이 주차장으로 변한다. 대형 안전사고가 날 때마다 인재(人災)라는 말이 따라 붙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불법 주차 차량 때문에 소방 장비의 접근이 늦어지는 것은 이제 거의 일상사가 되었다. 이번 제천 화재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12월 21일 발생한 충북 제천 화재로 인하여 29명이 숨졌다. 단순 화재를 대형 참사로 키운 이번 사고는 인재임이 이미 드러났다. 화재 주요 원인중 하나로 지목된 셀프점검이 현행법에 허용된 행위라니 말문이 막힌다. 셀프 점검 결과를 허위로 보고해도 처분은 최대 2백만 원의 과태료에 불과하다. 금전적으로 보면 미비(未備)한 시설을 보완하느니 과태료를 내는 것이 이익이라는 생각이 들 만하다. 무엇보다도 소방 안전 관리법 전반적인 재정비가 시급하다. 허술한 법규를 서둘러 보완하고 현실적인 소방 점검체계도 하루빨리 바로잡아야 한다. 화마(火魔)에 먹잇감을 안겨준 가연성 외장재는 불이난 의정부도시형 생활주택은 제천 스포츠센터와 같은 필로티 구조의 건물이다. 두 건물 모두 1층 주차장에서 시작된 불은 스티로폼을 이용한 드라이 비트 공법으로 시공된 외벽을 타고 삽시간에 위로 번졌다. 그리고 소방서로를 막은 불법주차 목욕탕 비상구를 막은 불법 적치물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화재 때마다 자주 도마에 올랐던 사안들이다. 가연성 외벽 마감재인 드라이 비트는 의정부 화재에서도 문제가 된 마감재다. 의정부 사고 후 6층 이상 모든 건축물에 불연재 또는 준 불연재를 사용토록 법을 강화했다. 제천스포츠센터 건물은 법 개정전에 지어진 것이다. 가연성 외장재를 사용한 고층 건물은 전국적으로 135개에 달한다고 하니 여간 우려스럽다. 골목길 소방도로 불법주차는 이번에도 구조 진입의 골든타임을 놓치게 만들었다. 2층 여자 사우나실에서 23명이 숨진 것은 선반이 비상구를 막은 것이 주된 요인이었다. 비상구는 말 그대로 위기 상황에 대비해 마련한 출구다. 그런 공간을 창고로 사용했다. 비상구임을 알리는 비상등도 꺼져 있었다고 한다. 3주전에 소방 점검을 했다고 하는데 당국은 뭘 점검했고 업주는 무슨 조치를 취했는지 기가 찰 노릇이다. 1층 로비의 스프링쿨러 알람 밸브가 폐쇄 되었으며 4층으로 허가난 건물에 8층과 9층을 증축했는데 9층은 아예 불법이라고 한다. 건물주와 관리자의 안전 불감증도 문제지만 당국의 관리 감독 부실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큰 불이 났을 때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소방관련 법안이 국회에 계류(繫留)돼 있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려졌다. 예를 들면 소방차등 긴급 자동차의 원활한 통행을 위해 주정차 특별 금지 구역을 지정하고 일정 규모 이상의 공동주택 소방차구역을 의무적으로 설치하고 소방공무원 소방활동 중 손해가 생겼을 경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만 소송을 제기한다는 내용이다. 국회도 이번 제천 참사를 계기로 소방 등 민생법안의 신속한 처리를 해야 한다. 억울한 희생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하려면 하루빨리 국회에 계류중인 소방 관련법이 통과되어야 한다. 화재는 늘어 날 수 있다. 하지만 인명(人命)피해는 줄일 수 있다. 우리 모두가 다시는 이런 비극을 되풀이 하지 않는데 노력해야 한다. 정부 대책과 매뉴얼 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밑바닥 수준인 국민의 안전 불감증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화재의 사고는 언제든지 예고 없이 우리의 생명을 위협할 것이다.

이명수 경기도문화원연합회 향토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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