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0년 4월 29일, 정조가 야심차게 준비했던 특별 사업인 ‘무예도보통지’ 편찬이 완료되었다. 정조는 임진왜란, 병자호란 같은 외세의 침입을 다시는 받지 않기 위해 국방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정예화 된 군사를 만들어야 하고, 정예병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무예를 제대로 익힐 수 있는 무예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만든 무예서가 바로 ‘무예도보통지’였다.

물론 무예도보통지는 정조의 의지만으로 이루어진 그 시대의 무예서는 아니다. 무예도보통지는 따지고 보면 200여 년의 편찬 역사가 있다. 임진왜란 기간인 1598년에 훈련도감 낭청이었던 한교(韓嶠)에 의해 6기의 무예를 담은 ‘무예제보(武藝諸譜)’가 만들어지고, 1759년에 무예에 탁월한 능력을 갖춘 사도세자가 한교가 완성한 6기의 무예에 권법 등 12기의 무예를 추가하여 18기를 완성하였다. 이 18기의 무예를 담아 편찬한 무예서가 ‘무예신보(武藝新譜)’이다. 현재 무예제보는 수원화성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어 국보급 유물로 지정이 될 것이지만, 사도세자가 편찬한 무예신보의 원본은 실전되어 존재하지 않는다.

정조는 사도세자가 편찬한 무예신보의 18기에 말을 타고 공격과 방어를 할 수 있는 마상무예 6기를 추가하여 24기의 무예를 완성하였다. 이 24가지 무예를 정리한 무예서가 ‘무예도보통지’이다. 정조의 명으로 ‘무예도보통지’를 만든 이들은 조선후기 최고의 실학자들이다. 그들이 바로 이덕무, 박제가, 백동수였다. 이덕무는 실용성 있는 학문과 제도를 추구했고, 박제가는 규장각 검서관으로 당대 학문의 최고 경지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과로 급제한 인물이었다. 또한 무예 시연을 주관한 장용영 초관 백동수는 조선 최고의 협객이자 무사로 평가받는 인물이었다.

이들이 무예도보통지를 만들면서 특별하게 정리한 무예가 바로 권법이었다. 무예도보통지에 존재하는 24가지 기예 중 유일하게 맨손으로 하는 무예가 바로 권법이다. 이 권법의 출발은 석굴암 본존불 옆에 있는 금강역사로부터 시작한다. 석가모니를 악귀로부터 지키기 위해 온 몸에 불같은 기운을 내뿜으며 공격과 방어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금강역사의 모습은 권법의 대표적인 자세였다. 이 권법은 손으로 하는 공격과 발로 하는 공격이 모두 존재하여 중국의 권법과도 다른 우리 민족 고유의 권법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 권법을 신라의 화랑과 낭도들이 익혔을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이 권법이 이어져 나타난 현대 무예가 바로 태권도이다. 태권도는 사도세자가 만든 무예신보와 정조시대 만든 무예도보통지의 권법을 그대로 이어 현대적으로 재창안된 우리 고유의 무예다. 이 무예가 오늘 전 세계로 퍼져 우리 민족 무예의 우수성을 알리고 있다.

무예도보통지는 작년 10월 27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IAC)를 통해 세계기록유산으로 선정되었다. 남북이 공동으로 신청해서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켰어야 하는데 아쉽게도 북한의 단독신청으로 세계기록유산이 되었다. 유네스코에서는 ‘무예도보통지’가 현대 북한 태권도의 원형이 됐고, 김홍도가 삽화를 그렸다고 강조한 점을 받아 들였다. 즉 무예도보통지의 권법이 현재 태권도의 원형이 되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그러니 태권도의 역사는 삼국시대로부터 시작해서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틀 전 있었던 남북고위급 회담에서 이루어진 공동성명에서 이번 평창올림픽에 북한의 태권도 시범단이 오기로 했다. 북한의 태권도는 바로 정조에 의해 만들어진 무예도보통지의 무예이다. 지금 수원시가 열심히 복원하여 문화콘텐츠로 활용하고 있는 무예가 바로 무예도보통지의 무예24기이고, 그중 대표적으로 권법을 시연하고 있다. 그러니 이번 평창 올림픽에서 대한민국과 형태가 조금 다른 북한 태권도의 시연과 함께 그 원형인 무예도보통지의 권법 시연이 함께 이루어지며 문화교류를 하였으면 한다.

무(武)란 지과(止戈)의 합성어이다. 결국 무(武)는 창을 내려놓게 하는 것이다. 바로 평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평화를 위해 군대가 존재하고 무예훈련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 역설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평화라는 것이다. 무예도보통지에 실려 있듯이 정조는 창을 내려놓게 하기 위해 무예도보통지를 만들었고 훈련을 시켰다. 이 진정한 평화의 의미가 평창올림픽의 북한 태권도 시연을 비롯한 남북 무예시연으로 나타나기를 희망한다.

김준혁 한신대학교 정조교양대학 교수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