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언서판(身言書判)이 좋아야 한다고 했다. 이는 중국 당나라 때에 관리를 등용하는 4가지의 조건이다. 신수, 말씨, 문필, 판단력이 그것이다.

출세란 무엇인가?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오르거나 유명해진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흔히 개천에서 용이 나온 경우를 출세했다고 말한다. 출세는 자신이 자랑할 수 있는 해당분야에서, 남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보적인 존재에 이르면 출세를 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고 신언서판의 전 영역에서 고른 면의 두각을 나타 낸 사람은 아니다. 어느 한 가지만을 잘하면 자신의 목적을 달성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身)은 몸이 건장하고 튼튼하며 위풍당당한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우러름의 풍채를 지니고 있다. 특히 얼굴이 잘 생겨 미남 미녀로 불려지고, 눈에는 총기가 서려있어 똑똑함이 묻어나는 사람이다.

언(言)은 말을 잘하는 사람이다. 말이란 코미디와 같은 말이 아니고, 이론이 논리정연하고 조리가 있으며, 남을 이해·설득 시킬 수 있는 비판적이고 합리적인 내용의 말이다. 고려시대(993년)에 ‘서희’ 장군은 ‘거란군’이 침입을 해오자, 적진으로 뛰어 들어가 적장인 ‘소손녕’을 상대로 담판을 통하여 피 한 방울을 안 흘리고, 거란 군을 철수 시켰다. 웅변가는 말로서 호소를 하고, 변호사는 말로서 제압을 한다. 그러나 정치인은 거짓말로 유혹한다.

서(書)는 글씨를 잘 쓰는 ‘한석봉’의 서예가보다는, 글을 잘 짓는 ‘김소월’과 같은 문장가라고 할 수 있다. 옛날의 과거시험은 주제에 걸 맞는 내용의 글을 잘 짓는 일이다. 생각이 말과 글이고, 말이 행동이기 때문이다. 판검사는 판결문으로 말한다고 했다.

판(判)은 판단과 결단력을 말한다. 판단은 예리하고 정확하며 냉철하되,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며 빠를수록 좋은 결과가 나온다. 위의 4가지 출세의 기준에서 가장 중요한 요건이 바로 판단력이다. 판단은 선택과도 같은 맥락이다. 판단의 기준과 척도는 자신의 철학과 경험, 주변의 배경지식을 갖고 있는 수준에서 결정이 된다. 미국의 빌게이츠는 10억 불 짜리의 아이디어를 단 15초 만에 구매결정을 했다고 한다.

즉, 어른과 아이, 남자와 여자, 학력과 경험의 유무, 신분과 지위, 자신과의 이해관련성에 따라서 판단의 결정이 다르다. 전쟁터의 장군과 운동경기장의 코치, 정치가, 기업가, 혁명가는 판단력이 뛰어난 사람들이다.

현대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판단과 선택이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할 수 있고, 판단의 실수(오판)가 운명을 가를 수도 있다. 마치 고스톱 판에서 그림 한 장의 운명과도 같다. 회사의 경영과 운동경기, 전쟁터에서의 작전, 직장과 학교, 결혼상대자의 선택과 결정은 모두가 판단력에서 나온다. 특히 혁명가나 선거직의 의원들은 판단력이 뛰어나다. 그러나 판단력이 미숙한 철새 정치인은 철학도 존심도 없는 삼류의 정치인들이 아닌가!

금년 6월에는 단체장의 선거가 있다. 역시 판단과 선택이다. 후보자는 어떤 전략을 세울 것인가! 유권자의 요구가 무엇인가를 명확히 판단해야 할 것이다. 반면에 유권자들은 선택이다. 선택의 결정요인에는 눈앞의 이해관계와 사리사욕도 있고, 술 한 잔이 될 수도 있겠지만, 국가와 지역사회의 원대한 목표와 비전을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지금 “우선 당장 먹기에는 감보다 곶감이 달다.”는 식의 복지혜택의 논리에 눈이 어두워 판단을 잘못하면 크나큰 실수요 오판이다. 우리는 선거에서 속고 또 속았다. 감언이설에 표를 팔아먹었다. 지금까지의 신언서판을 잘 되새겨 읽어보고 정확한 판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이세재 평택서부노인복지관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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