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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꽃길만 걸을 수 있을까?

2018년 01월 08일(월)
김상진

또 다시 새해가 왔다. 연말연시 며칠 동안은 가까운 사이는 가까운 사이대로, 또 자주 만나지 못했던 사이라면 마음이라도 전하려는 생각에 송구영신(送舊迎新)의 인사를 주고받는다. 내 경우도 SMS로 주변사람들과 송년, 또는 새해 인사를 나누고 또 그 덕분에 멀리 있는 학생이나 지인들의 소식을 듣기도 하였다. 예전에는 연말이면 주변 사람들에게 보낼 카드를 직접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써서 만들었다. 물론 그 시절에도 크리스마스카드나 신년 연하장을 판매하였지만, 손수 만든 카드가 정성이 담긴 카드라는 인식이 강해서 온갖 솜씨를 다 발휘해서 카드를 제작하였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겐 직접 전달하지만, 멀리 있는 사람들에겐 우편으로 카드를 발송하곤 하였다.

그러던 것이 1980년대 이후부터는 상점에서 판매하는 인쇄된 카드가 주류를 이루게 되었고, 1990년대 이후 ‘1人 1PC’ 시대가 열리며 인터넷의 보급에 따라 전자카드가 등장하게 되었다. 이 기간 동안은 인쇄된 종이카드와 전자카드가 공존하며, 이메일로 전자카드를 보내기도 하지만 여전히 연말이면 고마웠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상점에서 예쁜 카드를 고르곤 했다. 하지만 휴대폰이 등장하고 스마트폰이 보편화되면서 연말연시를 비롯한 특별한 날의 인사는 이제 거의 SMS가 대신하게 되었다.

이렇듯 카드의 양상은 달라졌지만, 인사말은 시대를 가리지 않고 대동소이 하다. 복 많이 받으세요, 건강을 기원합니다, 행운을 바랍니다, 모든 소망 이루시길 기원합니다, 등등. 물론 시대마다 다른 인사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최근에는 ‘꽃길만 걸으라’는 덕담을 자주 한다. 어쨌건, 우리가 하는 인사말은 대략 ‘늘, 항상, 좋은 것만 모두’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아예 ‘좋은 일만 생기길 바란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좀 야박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좋은 일만 생기라든지, 모든 소망을 이루란 인사말은 하지 않는다. 꽃길만 걸으란 말도 차마 못하겠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어떻게 좋은 일만 생길 것이며, 우리가 가는 길이 어찌 꽃길만 있겠는가. 맑은 날이 있는가 하면 흐린 날도 있고, 비가 오는 날도 있다. 때론 꽃길이 펼쳐지기도 하겠지만, 황톳길, 자갈길, 진흙탕길이 내 앞에 놓이기도 한다. 모든 소망을 이루라는 것도 그렇다. 저마다의 소망은 그 종류도, 내용도, 가짓수도 다를 것이다. 노력해서 이룰 수 있는 긍정적 소망도 있지만, 욕심이 빚어낸 탐욕스런 소망도 있다. 그런데 ‘많은 소망’도 아니고,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모든 소망’을 이루라니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다.

세상을 살아본 사람은 알겠지만, 인생은 나이만큼의 고민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요즘의 20대는 취업이나 진로를 두고 고민이 많다. 공자(孔子)는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고, 서른에 우뚝 선다(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고 하였다. 그러니 스스로 서기 전까지 고민이 많은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것 같다. 나의 20대도 예외는 아니어서, 매일 매일이 고민의 연속이었다. 지금도 생각나는 스물아홉의 12월 31일 밤에는 곧 서른이 된다는 두려움 보다, 이제 곧 20대의 갈등과 방황에서 벗어난다는 기대감에 부풀기도 하였다. 30대는 ‘20대의 고민에 30대의 고민을 더한 나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별로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 ‘있는 그대로의 하루’를 받아들이며, 한 해 한 해 내 나이를 받아들였다.

그런데 나이 오십이 넘어 깨달은 또 하나는 인생은 나이만큼의 고민도 있지만, 인생은 나이만큼의 지혜도 생긴다는 사실이다. 내게 무슨 일이 생기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더 중요하단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비록 우리가 살아가는 길에 좋은 일, 꽃길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의 긍정성이, 스스로의 도전 정신이 슬프고 불행한 일이 생겨도 좋은 일로 만들고, 자갈길 진흙길을 만나도 길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주어진 상황에 감사하며 욕심을 버리고, 소망하는 만큼 합당한 노력을 한다면 말처럼 ‘모든 소망’을 이룰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야말로, 좋은 일만 생기고 꽃길만 걸으며, 모든 소망을 이루는 2018년이 되리라.

김상진 한양대학교 교수, 한국시조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