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유산은 곧 브랜드"

▲ 7일 중부일보 소회의실에서 진행된 '경기천년 근대문화유산' 좌담회. 노민규기자
근대문화유산이란 가까운 역사에 있었던 유산들을 뜻한다. 우리나라에서 가까운 역사라고 한다면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과 분단, 전쟁을 겪고 지금까지 발전해온 과정일 것이다. 특히 경기도는 서울과 가깝고 접경지역이라는 특성상 일제 강점기와 전쟁기, 그리고 산업화와 도시화의 기억을 간직한 유산들이 많이 퍼져있다. 그 유산들이 안고 있는 기억들 역시 유산의 개수만큼 다양하다. 뼈아픈 기억을 간직하고 있기도 하며 다시 돌아가고 싶은 향수를 안고 있기도 하다.

중부일보는 경기문화재단의 후원을 받아 지난 9월부터 12월까지 총 20회에 걸쳐 기획 연재 시리즈 ‘2017 근대문화유산답사’를 진행했다. 최호진 건축도시연구소 지음 대표와 이현정 건축학박사, 최예선 문화 칼럼니스트, 이연경 연세대 공학연구원 등 4명의 필진은 도내 근대문화유산이 산재하고 있는 20개 지역을 찾아다니며 현장을 돌아보고 이를 기록했다. 그 대상 중에는 성공한 보존 사례도 있었고, 그렇지 못해 대책이 필요한 사례도 있었다.

근대문화유산답사 연재에 참여한 4명의 필진들이 모였다. 중부일보 회의실에서 7일 진행된 좌담회에서 필진들은 도내 근대문화유산에 대해 기본적이지만 가장 근본적인 주제로 토론의 장을 펼쳤다.


▲ (왼쪽부터) 최호진 건축도시연구소 지음 대표, 이현정 건축학 박사, 최예선 문화칼럼니스트, 이연경 연세대 공학연구원

▶ 경기도에 있어 근대문화유산이 가지는 의미란



필진들은 경기도에게 있어 근대문화유산은 그 유산을 간직한 각 지역의 정체성을 말해주는 매개체라고 입을 모았다. 어떤 문화유산이 생겨나고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이 곧 그 도시의 탄생과 일대기를 대변해준다는 것이다.

최호진 대표는 ‘경기도에 있어 근대문화유산은 그 지역의 브랜드’라고 말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의 노력으로 어떻게 그 지역이 형성됐고 지금까지 어떤 특색으로 유지돼왔는지, 앞으로 해당 도시의 비전은 무엇인지를 유산들이 표현해준다는 말이다. 그는 “현재 쓰이지 않는 도로, 물길, 철도 등 역시 당시 지역의 기억이자 정체성이며 현재 역사의 연속성을 가리키는 연결고리”라고 말했다.

최예선 칼럼니스트 역시 “각 도시들 중에서 자산화 할 수 있는 문화유산이 없다면 그 도시들은 무엇으로 자신들의 정체성과 존재이유를 형성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된다”며 “사람들을 그 지역에 머물게 하는 힘은 도시 인프라도 중요하지만 역사에 기반해 그 도시가 견지해 온 포지션, 정체성이라 여긴다”고 말했다.

또 필진들은 근대문화유산이란 특정 건물, 시설물 등 한정된 지칭이 아닌 그것이 존재했던 공간 위주로 바라봐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이현정 박사는 “경기 광주의 경안우시장은 1960년대 마장동의 거래량을 상회하는 등 지역을 대표하는 유산이었지만 도시화와 물난리로 사라져 지금은 구전과 자료로밖에 전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그럼에도 경안우시장은 광주시의 역사를 설명하는 데 빠져선 안될 장소”라고 덧붙였다.

이연경 연구원 역시 “근대문화유산들은 각자 다른 도시의 형성 시기와 성격을 나타낼 수 있는 주 요소”라며 “서울에서는 난개발로 인해 이미 사라져버린 문화유산을 다시 시간과 비용을 들여 복원하고 있다. 경기도는 아직 늦지 않은 만큼 보존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정체성과 스토리, 의미가 계승되고 있지 않는 근대문화유산



현재 원형이 잘 유지·보존되고 있거나 관광상품화 돼 다시금 활용되는 근대문화유산은 전체에 비하면 미미한 실정이다. 신도시와 도시인프라 개발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기존의 부지를 점하고 있는 건축유산들은 지자체에게서 대개 골칫거리로 더 와닿기 때문이다. 이에 각지의 많은 유산들이 방치되고 있거나 소리없이 철거되고 있다.

이현정 박사는 남양주시의 구 팔당역과 안양시의 구 서이면 사무소를 들며 “현재 이 두 곳은 주변 지역의 번성으로 지자체에게서 잘 보존해야 하는 유산이기보다는 개발에 제한이 되는 부담으로 더 여겨지는 것 같다”며 “이외에도 개발에 대한 욕망이 앞서 이같은 취급을 받거나 사라져가는 유산들이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현 팔당역 인근은 남한강을 따라 이어지는 자전거 라이딩 코스로 각광받으며 새롭게 부상되고 있지만 구 팔당역은 사정이 정 반대다. 가끔씩 시멘트 공장의 운반책으로 쓰일 뿐 2008년 감전사고 이후 출입이 통제돼 거의 흉물 수준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곳에 대한 활용 계획 역시 기록만 있을 뿐 실행은 없는 상황이다.

구 서이면사무소는 구 팔당역에 비해 관리상태는 비교적 양호하다. 하지만 일대의 안양1번가가 안양 최대 번화가로 성장하면서 그 위상이 저하되기 시작했다. 현재 구 서이면사무소는 소중한 유산이라기보다는 거리 번성의 걸림돌로 여겨지고 있다.

한편 이연경 연구원은 광명 동굴을 예로 들며 발언했다. 그는 “확실히 광명동굴은 광명시가 근대의 문화유산을 가장 성공적으로 활용한 사례라고 평가할 만 하다”면서도 “하지만 그 관광의 내부 구성을 보면 당시 그곳이 갖고 있던 역사적인 배경과 감수성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이같은 문제는 근대문화유산의 활용에 이윤과 소비의 논리가 더 앞서있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고 말했다.



▶ 변화와 발전의 시대, 그럼에도 근대문화유산이 보존돼야 하는 이유



현대는 탈 지역화, 탈 국가화의 시대다. 서울을 기준으로 여러 도시를 오가기에 도시에 대한 경계도, “고향”에 대한 개념과 애착도 사라지고 있다. 그런 시점에서 사람들에게 지역 정체성 함양을 바라는 것은 무리인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그럼에도 지역의 근대문화유산이 보존돼야 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라는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들게 마련이다. 이에 대해 필진들은 ‘지역의 근대문화유산을 보존하는 것이 곧 해당 지역의 존재가치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최호진 대표는 “외국 커피브랜드가 국내에서 최고 점유율을 보이듯, 이제 ‘홈타운’의 개념은 사라진지 오래다. 하지만 오히려 이럴때일수록 자신의 정체성을 명확히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지역 역시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그는 “왜 그 지역에 머물러야 하는지, 이 지역이 어떤 곳인지가 명확하게 전승되지 않는다면 그저 삶을 위해 거쳐가는 그저그런 도시 중 하나로 그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연경 연구원 역시 “어떤 지역의 성격과 그간 살아온 과정이 기록되고 흔적이 남는 것. 그것이 장기적으로 그 도시의 성격이 되고 존재이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현정 박사는 “현재 건축계, 지자체, 나아가 일반인들은 굉장히 가까운 역사를 무시하거나 홀대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 홀대하는 가까운 역사들이 모이고 모여 우리가 아는 역사가 되고 삶이 된다”며 “특히 서울과 가까운 경기도의 특성상 문화유산에 대한 보존이 철저해야 도의 주체성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최예선 칼럼니스트는 “유산의 보존은 대단한 것이 아니라 각 개인과 장소의 자잘한 형용사들이 쌓여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물론 모든 유형의 유산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그 지역에 대한 기록만은 충실하게 남겨 후대에 전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황호영·김수언기자/alex179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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