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제가 본격적으로 실시되기 이전인 1980년대 후반기는 우리나라로 볼 때 문화융성의 기반이 되는 시기라 할 수 있다. 86아시안게임을 비롯한 88올림픽 등 굵직굵직한 국제 행사가 우리의 문화를 세계로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정부에서는 ‘지역문화 창달’이라는 슬로건으로 각종 문화 사업을 근간으로 하는 콘셉트 발굴에 나섰다.

이에 따라 당시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초등학교는 물론 중ㆍ고등학교 교과서에 등장하는 주요 유명 예술인들의 이름을 차용한 문학축제와 음악대회가 유행하였다.

또한 예술인의 고향, 성장한 곳, 유택의 소재에 따라 시ㆍ군 간에 연고권을 선점하려고 치열한 공방도 있었다. 예컨대 ‘나는 왕이로소이다’ 의 저자인 ‘홍사용’ 시인의 경우 태어난 곳은 용인군이었으나 아버지 사망이후 인근 화성군 동탄면 석우리에서 성장했으며 사후 그곳에 유택이 있었음에도 용인군과 화성군이 그의 이름 사용을 두고 갈등을 빚었으며 우리에게 너무도 잘 알려진 음악가 홍난파 선생의 경우에도 1898년 태어날 때는 수원군 남양면 활초리였는데 1949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남양면이 화성군으로 편입되자 ‘난파 음악제’를 놓고 수원시와 화성군의 다툼이 해마다 이어져 결국 상급관청인 경기도에서 중재에 나서기도 했다. 지금도 팔달산 자락에 음악가 홍난파 선생이 수원 출신임을 알리는 ‘고향의 봄’이라는 노래비가 있는데, 당시 연고권을 가지고 지방자치단체끼리 얼마나 치열하게 싸웠는지 그 흔적을 가늠 할 수 있다.

‘고향의 봄’ 은 일제 강점기인 1923년경 이원수 선생이 작사를 하고 홍난파 선생이 작곡한 독립운동가의 애환과 한민족의 얼과 혼이 담긴 우리나라 대표적 국민동요다.

특히 2000년 8월부터 시작된 남북 이산가족 대면 상봉에 있어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남북한 동포가 함께 어울려서 부르는 노래가 바로 ‘고향의 봄’이다.

홍난파의 본명은 홍영후이다. 그는 한국근대음악사중 양악사의 선구자로서 일제 강점기, 좌절하고 있는 우리 민족을 위해 주옥같은 노래를 작곡하여 용기와 힘을 북돋으며 애환을 달래주었다. 당시, 우리 국민들이 즐겨 부르던 ‘봉선화’와 ‘사공의 노래’ . ‘봄처녀’ , ‘성불사의 밤’ , ‘옛동산에 올라’ . ‘작은 별’ , ‘낮에 나온 반달’ , ‘그리움’ , ‘고향생각’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그가 만든 노래는 지금도 국민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홍난파 선생은 ‘친일’이라는 굴레에 얽매어 크나큰 공(功) 보다는 작은 과(過)로 인하여 그 빛을 잃어 버린 지 오래되었다. 그것은 그가 태어난 생가를 가서 보면 알 수가 있다. 이정표도 제대로 설치되어 있질 않고 진입로는 좁은 농로를 사용하고 있다. 다섯 칸 정도 되는 낡은 초가집에 그와 관련된 자료는 생애에 활동을 담은 복사된 사진 7점이 고작이었다. 관리하는 사람도 없어 우리나라 근대음악사의 선구자요, 천재 음악가의 생가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물론 그가 죽음을 맞이하기 삼년 전 친일단체에 가입했고 ‘사상전향에 대한 논문 과 일본을 위한 작곡’을 하는 과(過)를 범함으로써 친일의 굴레를 짊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왜 친일 행적을 했는지 한번쯤은 생각해 주어야 한다. 홍난파 선생 역시 한때는 잃어버린 조국을 찾기 위해 독립운동 단체인 ‘수양동우회’에 가입 활동을 하다 투옥되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지병인 늑막염으로 매일 각혈을 쏟아내는 심신이 상실된 상태에서 전향 제의를 받았으며 살기 위해 어쩔 수없이 몇 편의 친일관련 글과 작곡을 해 준 것이다.

결국 그는 늑막염으로 인하여 출옥한지 3년여 만인 1941년 43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 했음에도 과연 친일파라고 할 수 있겠는가? 좀 더 냉철히 생각하여 생가는 물론, ‘난파 전국 음악 콩쿠르’ , ‘ 난파 음악제’ 등을 과거처럼 해당 자치단체에서 적극 나서 활성화 시키는 방안도 또 하나의 관광 자원을 만드는 것이라 생각된다. 오스트리아 짤츠부르크에 있는 모차르트 생가를 보아라, 그곳을 찾는 수많은 관광객들의 여파로 주변에는 식당과 선물가게 즐비하게 늘어 서있고 그 지역의 경제는 활력에 넘쳐있어 부러울 뿐이다.

정겸 시인, 경기시인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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