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과천시, 전원도시의 꿈을 이루다

▲ 가로수길
사당을 지나 남태령고개를 넘으면 연속으로 만나는 두 개의 건축물이 있다. 관문사거리의 동측에 서있는 한옥 지붕이 오롯이 솟아 있는 과천동회관과 저 멀리에서도 종소리가 들릴 거 같은 수원대교구 과천성당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남태령고개를 넘어 과천으로 접어드노라면, 차창밖 풍경이 조금씩 푸르게 변하는 게 느껴진다. 지역번호 02를 쓰는, 서울의 생활권 안에 드는 도시이지만 과천으로 들어서면 무성한 가로수들과 주변을 둘러싼 산의 능선이 눈을 시원하게 해주며, 이 곳은 과천, 전원도시 과천임을 알려준다.



▶ 전원도시 과천. 푸르고 푸른.

과천(果川)이라는 신도시는 1978년 10월 15일 과천 신도시 계획이 결정고시됨에 따라 등장하였다. 대한주택공사에서 펴낸 과천신도시개발사(1984)에 따르면, 과천 신도시 개발 계획을 보면, 전체 인구는 4만5천 명, 전체 면적은 35.78km2의 도시로 주거지역은 전체 면적의 4.16%에 해당하는 1.49km2, 상업지역은 전체 면적의 0.34%에 해당하는 0.12km2,이며, 공업지역은 아예 없는데 반해 녹지지역은 전체 면적의 95.50%에 해당하는 34.17km2 에 이르렀다. 계획 당시 95퍼센트가 넘는 계획된 지역이 녹지라는 것은, 청계산과 관악산으로 둘러싸인 과천의 입지적 특징에 더해, 상당한 부분의 토지가 그린벨트로 설정되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정부제2종합청사가 위치하는 중앙동과 과천의 원래 중심지였던 부림동과 별양동에 집중적으로 업무 및 상업, 그리고 주거지역이 밀집하였고 그 주변은 녹지로 둘러싸인 도시경관을 형성하였다. 당시 계획된 주택유형은 단독주택이 880호, 연립주택이 230호, 그리고 아파트가 8천920호였는데, 단독주택들은 주로 외곽에, 아파트와 연립들은 주로 중심부에 위치하였다. 자연녹지외에도 중앙공원을 비롯한 공원들이 다수 분포하여 과천이라는 신도시의 밀도는 다른 도시들에 비해 특별하게 낮은 수준이었다.

과천에 들어서면 푸르게 느껴지는 건, 아마도 이 때문일 것이다. 관악산과 청계산으로 둘러싸여 있기에 그 어디에서도 산의 능선이 보이며, 도심 밀도가 낮고 고층빌딩이나 고층아파트가 많이 분포하지 않아 유독 풍성한 가로수들이 더 두드러지게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도심 중앙에도 공원들이 다수 분포하여 그 푸름을 더해주고 있다.



▶ 아주 오래된, 전원의 꿈.

과천을 흔힌들 전원도시라 하는데, 과연 이 전원도시란 무엇일까?

전원도시(Garden City)라는 개념은 영국의 하워드(Ebenezer Howard)가 19세기 말 제안한 도시개념으로 공업화된 대도시의 소음과 혼잡를 벗어나 도시와 농촌의 장점을 결합한 자족적 신도시를 지향하는 것이다. 이 계획은 인구 3만2천 명, 약 4km2 의 시가지와 20km2 의 농지로 이루어진 규모에 그린벨트로 둘러싸여 있으며, 시가지 중심에는 중앙공원과 가로수가 늘어선 대로가 배치되는 것이다. 도시의 편리함과 시골의 풍요로움을 모두 누릴 수 있는 전원도시 개념이 한국에 소개된 것은 1920년대 일본을 통해서였다. 당시 급격한 도시화와 공업화로 주거환경이 점점 열악해지고 있던 한국의 도시에도 전원도시라는 개념은 매우 유용한 것이었고, 매일신보 1937년 2월 10일 기사에 따르면, 1937년에는 경성 주변의 8개 도시인 수원, 인천, 금포, 개성, 의정부, 춘천, 이천, 김양장을 전원도시로 개발하고 이들을 경성과 방사형으로 잇고, 이 도시들간을 잇는 환상도로 계획이 발표되기도 하였다. 이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지만, 서울의 장충동이나 북아현동, 용산 등에는 전원(교외)주택지가 개발됨으로 전원도시의 꿈이 일부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1920년대부터 서울이 꿈꾸었던 전원도시는 1986년 비로소 과천에서 실현되었다. 인구 4만5천 명, 면적은 35.78km2 규모의 서울의 위성도시인 과천은 현재 인구는 6만3천778명에 이르긴 하지만 그래도 다른 위성도시들에 비해서 그 밀도가 현저히 낮은 편이다. 거의 비슷한 크기의 광명시 인구가 33만 명, 군포시의 경우가 28만 명 정도의 규모임을 생각해볼 때 이 밀도는 상당히 낮은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저층으로 이루어졌던 주공아파트들 중 1,2,6,12단지는 이미 재건축이 진행중이고, 남은 단지들도 재건축을 준비 중이라 오래 꿈꾸었다가 비로소 실현되었던 전원도시의 꿈은 아마도 조만간 사라지고 말 듯 하다. 지금의 과천은 가로수 뒤 가림막이 일반화되었을 정도로 온통 재건축 중이다.



▶ 전원의 판타지아. 유원지와 미술관.

1980~1990년대에 유년시절을 보낸 사람들이라면 과천에서 보내던 봄과 가을을 기억할 것이다. 서울대공원과 서울랜드, 그리고 국립현대미술관이 위치한 과천은 전원도시이자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위락을 제공하는 유원지이기도 하다. 서울랜드와 서울대공원, 국립현대미술관, 국립과천과학관, 렛츠런파크(경마장)으로 이루어진 위락시설이 위치한 청계산 자락 막계동에는 원래 큰 저수지가 있었고, 그 주변은 주로 농지로 사용되었는데, 이 곳이 유원지로 개발됨에 따라 이 곳에 살던 사람들은 지금의 문원동 공원마을과 청계마을의 주택단지로 이주하였다. 과천의 곳곳에는 문원동 같은 이주마을이 곳곳에 위치하는데, 중앙동과 부림동, 별양동 등도 모두 과천 신시가지 개발계획에 따라 이주해야만 했던 이주민들을 위해 만들어진 주택지였다.

서울대공원을 비롯한 위락시설군이 차지하는 면적은 20만평에 이르며, 이 지역은 1984년 서울대공원 개장, 1986년 국립현대미술관 이전, 1988년 서울랜드 개장, 1989년 경마장 개장, 2008년 국립과학관 개관으로 점차 채워져 갔다. 과천에 건설된 서울대공원과 그 일대 위락시설은 실재하는 전원도시 과천에 꽃을 피운 환상의 나라였다. 서울랜드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가사처럼 ‘희망의 나라, 신나는 우리 세상’인 이 곳의 가장 큰 매력은 서울대공원과 서울랜드, 그리고 국립현대미술관을 잇는 서울대공원순환도로이다. 서울대공원 순환도로에는 코끼리열차도 다니고, 그 하늘 위로는 스카이리프트도 다닌다. 순환로 옆으로 나 있는 벚꽃나무 가득한 도로로는 지하철역과 국립현대미술관을 잇는 미술과녀틀버스가 다니기도 한다. 서울대공원 순환도로를 따라 걷거나, 무언가를 타고 가노라면 오롯이 그 공간 안에, 전원 속 판타지아 안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특별히 해질녘의 스카이리프트는 아름다운 일몰의 풍경도 선물해준다.

과천이라는 신도시는 한국에서 오랜 시간 동안 꿈꿔왔던 전원도시가 실현된 예였고, 이상도시의 실현으로 존재하였다. 그러나 정부종합청사의 세종시로의 이전, 저층주공아파트들의 재건축 등의 변화는 앞으로 과천의 모습을 크게 변화시킬 지도 모르겠다. 그렇더라도 30년 전 그 곳에서 꾸었던 전원도시의 꿈을 잊지 말길. 또한 그 속에 구축된 또 하나의 과천, 판타지아로서의 과천인 서울대공원 일대가 1980~1990년대를 서울에서 보낸 많은 이들의 추억을 간직한 채, 계속하여 지금처럼 환상의 나라로 남아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연경 연세대 공학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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