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예술가의 작업실은 일반 대중과 동떨어진 세계라고 생각하기 쉽다. 때문에 예술가에게서 나오는 작품에도 으레 현학적이라는 선입견이 붙어 어렵게 치부되곤 한다. 하지만 예술가의 내면을 파고들면 예술행위의 의도와 본질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자신의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작가와 관객 모두를 아우른 인간 자체에 대해 표현하기도 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상을 그리기도 한다. 그에 쓰이는 재료나 작품의 외적인 모습은 부차적인 요소다. 한편 예술가들 중에는 작품에 보다 단순하고 명료한 심미성을 추구해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고자 하기도 한다. 작품에 담긴 의미를 알기 쉽도록, 만약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심미성과 각자의 느낌이라도 얻을 수 있도록 말이다. 화성시 정남면에 있는 김희경, 안재홍, 안택근 작가가 그렇다. 이들의 작업실을 만나봤다.



▶ 한지로 꽃을 피우는 예술가 - 김희경 작가



정남면의 공단을 등지고 한적한 길로 들어서면 곧바로 조형적인 요소가 돋보이는 김희경 작가의 작업실이 위치해 있다. 김 작가의 작업실에는 소수의 철 조형물과 함께 다수의 한지 조형물이 전시돼 있었다. 김 작가는 8년 전 까지만 해도 돌, 나무, 철과 같은 단단하고 무거운 재료로 조형물을 만들던 작가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작업은 8년 전 우연한 계기로 바뀌게 됐다. 당시 이탈리아의 한 미술관으로부터 전시 제의를 받은 후, 운반이 쉽고 조형적인 요소를 표현할 수 있는 재료를 모색하다 한지를 선택했다고 한다.

하지만 우연한 선택의 결과는 컸다. 그는 한지에서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찾아냈고, 거듭된 연구와 작품 활동을 통해 새로운 분야의 조형을 꽃피우게 됐다. 판 위에 그려지는 기본 선도 한지고, 수십 회 덧씌워지며 단단해지는 것 역시 한지다. 그렇게 평면 위에서 탄생한 입체 조형물은 우아한 곡선과 고상한 아름다움, 부드러운 색채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선보인다. 그의 작품은 매년 이탈리아, 프랑스 등 유럽 각국에서 전시와 페어 등을 진행하며 인정받고 있다.


김 작가의 작품은 유독 꽃봉우리와 나무의 형상을 한 것이 많다. 그의 작품관이 여기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파리를 머금고 있는 나무는 수많은 영혼을 담은 인간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만들었어요. 또 만개하는 꽃은 생명을 잉태한 신비로운 존재잖아요? 그 무한한 에너지를 블로우(Blow)로 표현하는 게 제 한지 작업의 과제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김희경 작가는 스스로 깨달음의 꽃을 키운다는 마음으로 작업을 한다. 그에게 작업은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정화하는 구원의 루트이자 대중과 소통하는 그만의 언어다.

그의 예술은 한 인간이 세속을 초월해 만개하는 염원을 이야기 하고 있다.




▶ 수행하는 자연인 예술가 - 안택근 작가


김희경 작가의 작업실을 나오자 흡사 수행하는 스님 같은 모습의 남성이 관객들을 안내했다. 잠깐의 언덕길을 올라가며 아이들에게 이곳에서 나는 꽃과 풀에 대해 이야기하는가 하면 근방에 있는 융건릉에 대해 친근하게 설명하기도 했다. 언덕의 끝자락에 있는 2층 건물에 도착하자 그제서야 자신을 소개했다. 그가 바로 안택근 작가였다.

안 작가는 수원과 화성에서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질문하는 작업을 주로 진행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그의 작품은 조금 특별하다. 그의 작업실 한 켠에 위치한 아크릴 벽에는 수많은 벽돌 조각들이 형형색색의 실에 감겨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작가는 화성에 처음으로 들어선 아파트 단지의 공사 현장에서 주워온 돌과 케이블 선들을 한강변에서 수집한 돌과 엮어 만든 벽이라고 설명했다. 작품에서 그는 자연과 인간, 그리고 현대 문화의 관계를 표현하고자 한다.

그 벽과 같이 안택근 작가의 작업은 예술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탱자나무 가시를 채색해 쌓아놓는가 하면 아예 자신의 공간을 에워싸 스스로를 위리안치(圍籬安置)해놓기도 한다. 언뜻 보면 수행과도 같아 보이는 행동들. 이를 통해 작가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변화시키는 주변 환경에 스스로의 삶을 맞춰 바라보고자 노력한다. 그런 그에게는 특별한 예술적 담론이나 추구하는 예술상도 없다.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되 그 안에서 살아가는 스스로의 모습과 이야기를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뿐이다.

자연과 인간을 동등하게 바라보며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안택근 작가. 자연인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그의 예술은 자연과 현대인의 상호영향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 차가운 철로 따뜻한 인간 군상을 그리는 예술가 - 안재홍 작가


안택근 작가와 같은 작업실을 쓰는 안재홍 작가. 그는 안택근 작가의 동문이자 아내다. 그 역시 자연 속에서 성찰하는 인간을 그리는 것은 같지만 안재홍 작가의 스펙트럼은 보다 간결하고 명확하다. 그는 구리, 철 등 금속을 구부리거나 압축하고 이어붙이는 것을 통해 다양한 인간 군상을 재현한다.

그의 작품들이 갖는 주제의식은 ‘나를 본다’라는 하나로 점철된다. 육아와 가사로 작업을 중단해야 했던 수년간의 시간, 그 때 눈에 띈 비바람에 흔들리는 느티나무는 그의 예술세계의 기폭점이 됐다. 그날 이후 그가 만드는 사람 형상은 우거진 나무줄기의 형상과도 비슷해졌다. 이를 통해 안 작가는 나무의 생명력을 담은 인간 군상을 표현하고 있다.

2002년 시작한 개인전은 해마다 유수의 미술관의 초청을 받아왔고 지난 6월에는 ‘2017 서울국제조각페스타’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재질, 모티브 등 큰 틀에서의 변화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세월이 지나면서 작가의 작업에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단순히 가느다란 선을 뭉치고 결박하던 것에서조금 더 큰 틀을 용접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거나, 드로잉을 강조해 나무의 느낌을 더 많이 살리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변화한 것은 형상의 포즈다.

안 작가는 “초기 작품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억압돼있는 저의 모습을 표현하다보니 눌려 있고 암울한 느낌이 있었어요. 저의 내면만을 바라보려 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점차적으로 밖을 보려고 노력했고 그 느낌이 작품에도 반영되고 있어요. 제 속에서 자연으로, 타인으로 작품의 시선이 옮겨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라고 작품의 변화를 소개했다.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위안을 받고 스스로를 치유한다고 여기는 안 작가. 그의 작업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울림을 주는, 성찰하는 인간의 표현이다.

황호영기자/alex179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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