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절벽이라고 한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낳지 않으려 든다. 우리집에도 장성한 아이들이 있지만 아들도 딸도 연애조차 안정적으로 하지 않는 것 같다. 물론 제자들도 마찬가지어서, 대학원생들 중에는 결혼은 아예 생각지도 않는 삼십대 비혼자들을 심심챦게 발견하게 된다.

이들은 대체 왜 자신의 짝을 찾아 둥지 틀 생각을 하지 않을까? 우리 때는 그나마 연애를 동경하는 분위기 정도는 있었다. 또한 나이가 차면 혼인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함께.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 자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것 같다.

삶이 척박해지는 것과 관계가 있을까?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타인에 대한 배려는커녕 자신의 몸뚱아리 하나 건사하는 것이 어려운 세태가 미래를 꿈꾸지 않도록 만드는 것인가? 옛날에는 가족들이 울타리가 되어 주기도 했었으나 요즘 젊은이들에게 가족은 부담이나 주지 않으면 다행한 존재인 것 같다.

개인의 선택권은 이제 점점 늘어나 혼인이나 출산을 선택의 문제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변화했다면 출산을 장려하는 정책의 방향 자체를 바꿔야 하는 것은 아닐까? 육아수당을 주고 유치원 무상교육을 제공하기를 넘어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이 개인과 사회에 얼마나 큰 기쁨을 가져오는 축복받을 일인지를 설득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인구절벽이라고 위협하거나 양육의 부담을 줄여주겠다고 유인할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주는 행복감과 즐거움, 나아가 자식이 있는 노후는 얼마나 충족적인지 세세히 알려줄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사실 출산 전까지 육아가 얼마나 나를 희생시켜야 하는 일인지 잘 몰랐었다. 하지만 더 무지했던 것은 자식들이 내 삶에 어떤 즐거움을 가져다줄지 알지 못했었다. 아무도 아이들이 있는 삶과 아이들이 없는 삶이 어떻게 다를 수 있는지 가르쳐주지 않았었다. 다만 자식은 당연히 낳아야 하는 일, 시집을 가면 집안의 대를 꼭 이어줘야 하는 일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출산의 의무는 있었지만 아이들이 주는 기쁨에 대해선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때는 훌륭하게 장성한 자식이든 그렇지 않은 자식이든 집안에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즐거움이 되는 것인지 알지 못했었다.

지난겨울 정말 막막한 경험을 했었다. 아이들이 각자 자신의 살길을 찾아 집을 떠난 것이었다. 큰 아이는 대학원 마지막 학기를 보내기 위해 기숙사로, 작은아이는 유학길로 출가를 하였다. 든 자리를 몰라도 나간 자리는 크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꼈는데, 심지어는 밤에 악몽까지 꾸는 일이 반복되었다. 혼자 어둠을 막막히 보내는 일에 익숙하지 않다보니 유달리 저녁시간대가 견디기 힘들었다. 특히 딸과 연락이 되지 않는 날은 형벌이었다. 조바심과 걱정이 앞서는 때는 가만히 앉아 있기조차도 쉽지 않았다.

젊은 시절에는 혼자 독립적으로 살아보는 것을 꿈꾸었다. 배우자와 아이들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여유, 그것이 소원이었다. 하지만 막상 아이들로부터 해방이 되자 곧바로 깨달음이 왔다. 혼자는 아무것도 하기 힘들다는 사실. 백화점이나 마트 가는 일조차 혼자는 외롭고 쓸쓸하다는 것. 자신의 분신인 아이들을 앞장세우고 갔었던 시간들이 얼마나 뿌듯하고 든든한 일이었는지 절실히 느껴졌다. 아이들을 위해서 빨래를 하고 먹을 것을 준비하고 방을 치웠던 일들이, 막상 아이들과 함께 있었던 시기에는 다 귀챦은 고통이었다. 하지만 혼자가 되고 보니 그런 번잡함이 심지어는 그리워지기까지 하였다. 귀가할 때마다 느끼게 되는 집안의 공기마저 사람의 온기 없이 냉랭한 것이 마치 무덤속이 이러리란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기다릴 필요가 없는 삶,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는 삶. 살아갈 이유가 없다는 깨달음이 왔다.

아직 가족이 주는 의미를 모두 터득한 것은 아니다. 치매가 와서 거동도 못하는 시어머님과 자주 길 잃고 헤매는 친정어머니는 내게 큰 짐이다. 하지만 그분들이 안계신다면 느끼게 될 적막함도 아마 아이들이 떠날 때와 같으리라. 그나마 내 삶의 의미라는 것이 그분들의 존재로서 확인이 되는 것이기에 이별의 시간이 멀지 않다 해도 그때까지 기댈 곳이 있다는 든든함을 만끽하려고 한다.

내가 이 세상에 와서 남겨놓고 갈 것들 중 가장 완벽하게 잘난 성과물이 무엇인지 곰곰 생각해보면, 그것은 다름 아닌 아이이란 생각이 든다. 가족은 그런 것이리라. 윗대는 존재자체로도 말없는 버팀목이 되어주고 아랫대는 아름다운 생명의 힘을 깨닫게 해주는 분신. 출산과 육아는 힘들었지만 그런 과정이 내게 가져다 준 충족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경험이었다. 참 다행한 선택이었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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