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천시, 산업유산 그리고 기억의 유산
근현대 건축자산이 도시의 문화정체성에 어떤 역할을 할까? 부천이라는 젊은 도시를 마주하며 이 질문을 떠올렸다. 부천시의 역사는 40년을 조금 넘었다. 1973년에 시로 승격되기 전에는 소사지역이 경인철도 중심지인 인천 부평과 뗄 수 없는 관계로 엮여있고,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 왕실의 음택지였던 작동에 부마와 옹주의 묘소 유적이 있다. 구한말 박해를 피해 여월동에 모인 천주교도들이 옹기를 굽고 팔면서 형성한 교우촌의 역사도 있고, 고강동 일대는 발굴된 유물이 제법 많은 청동기 유적지다.
이런 역사 유적을 조금씩 덜어내 촘촘히 역사를 구성하다보면, 이곳이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거주하며 동네마다 조금씩 다른 역사를 이뤄온 곳임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현재의 부천이라는 도시의 틀을 형성한 근현대 건축유산은 아쉽게도 찾아보기 어렵다. 도시의 틀이 채 형성되기 전에, 지역의 역사라는 맥락이 파악되기도 전에 낡고 쓸모를 잃었다는 이유로 어떤 시절은 사라진 것이다.
부천은 서울과 인천 사이의 56㎢의 면적에 85만 명이 살아가는 도시다. 인구밀도로 서울과 1,2위를 다투는 인구과밀도시다. 그러나 유입되는 인구가 많다는 것은 도시의 문화적 측면을 높이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한다. 지난 6월 부천시는 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에 신청서를 제출하며 도시가 가진 문화자산에 자신감을 내보였다. 전국에서 가장 활발한 도서관시스템과 부천판타스틱 영화제, 국제만화축제 등 시민 중심의 행사와 교육프로그램을 오랫동안 치러온 관록과 경험이 쌓였기 때문이었다.
새롭게 수용한 문화도 시간이 쌓여가자 도시의 정체성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문화정체성을 더욱 견고히 하기 위해서는 도시의 감수성을 품은 장소와 반드시 연계되어야 한다. 도시의 기억을 품은 건축자산, 특히 우리 삶과 가까운 과거를 다루는 근현대 건축자산이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번 칼럼에서는 부천의 근현대 건축자산 중 산업유산과 골목과 물길에 연계된 기억의 유산에 주목해서 들여다보려 한다.
부천은 서울의 배후산업도시다. 1950년대부터 경공업이 발전하여 70년대까지 활발히 경제를 부흥시켰다. 1990년 이후에는 수도권 과밀 방지 제약으로 인천 남동공단과 시흥 등지로 공장 이전이 빈번히 이루어졌지만 신한일전기, 페어차일드코리아반도체. 한국콜마, 동부하이텍 등 정밀기계, 반도체, 화학, 화장품, 식음료, 섬유, 전자 산업 등이 여전히 활발하다.
산업유산은 오랫동안 도시의 경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므로 시민들의 경험이나 기억이 직접적으로 스며있다. 공간이 가진 독특한 미학이 색다른 감각을 전해주기 때문에 유휴산업건축물들은 상업용도나 문화적인 용도로 빈번히 활용되기도 한다. 부천의 공단은 여전히 가동중이며 살아있는 건축자산이다. 섣불리 건물의 가치와 활용을 평가하지 않으며 도시의 기억을 담은 장소로서 이들 자산의 현황을 살펴보려 한다.
신한일전기가 있는 송내동과 춘의-도당 공단은 주목해야할 지역이다. 1969년 설립된 신한일전기는 부천에서 50년을 이어온 기업이다. 공장과 주택지가 공존해온 이 지역은 최근 공장 확장공사와 주택 재개발 공사가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다. 노후된 공장과 필요한 생산시설을 확충을 위해 부분적으로 건물을 철거했지만 주요 시설들은 남아있는 상태다. 공사후 변화된 모습과 과거의 공장 건물들이 어떻게 공존할지 지켜볼 지역이다.
도당 공단은 춘의산 자락에 자리잡아 공단 뒤로 산이 두르고 있는 이색적인 풍경을 보여준다. 특히 이 지역은 다양한 연대의 산업시설물이 공존한다. 춘의역 초입에는 연대가 상당히 거슬러 올라가는 붉은 벽돌로 된 창고와 공장 등이 비어있거나 가동중이며, 70~90년대의 공장 건축들이 증축과 신축을 거듭하면서 도당공원까지 이어진다. 도로변에 자리잡은 부천공구상가는 지역의 특수성을 보여준다. 배의 형태에 중세의 성곽의 장식을 가져온 이색적인 외관이 눈에 띈다. 주거와 공업지역이 뒤섞인 도당동과 내동 일대는 이전하거나 폐업한 산업시설들이 철거되고 아파트단지가 생기는 ‘기승전아파트 현상’이 곧잘 일어나지만 여전히 창고와 공장 등이 남아있어 한 시대를 증언하고 있다.
산업시설물들의 가치가 재조명되는 가운데, 부천시에서 추진하는 가장 흥미로운 프로젝트는 폐소각장을 개조하는 ‘아트벙커 39’ 프로젝트다. 삼정동 소각장은 1995년에 세워져 15년간 생활쓰레기 소각장으로 소명을 다한 후 2010년 가동을 멈췄다. 부천시는 이 건물을 철거하지 않고 재활용하기로 결정했다. 주민과의 담화, 역사아카이빙, 문화예술 행사 및 지역대학과의 합동 스터디 등 모두 24번의 사전 프로그램을 시도한 후에 숲이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그 모습을 바꾸게 되었다.
부천의 80년대를 보여주는 소설 『원미동 사람들』 속 풍경은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다. 서울에서 집을 구하지 못한 일가족의 어쩔 수 없는 거처였던 부천 원미동. 그 속에서 희망을 찾았던 건 원미동이라는 이름에 숨은 ‘멀고도 아름답다’는 몽환적인 뉘앙스 때문도 있었다. 이 소설은 부천이라는 도시에 대한 시민의 감수성을 질문하는 첫 단추가 된다. 부천은 서울에 입성하기 위한 통과도로에 불과한가? 사람들을 이 도시에 머무르게 하려면 어떤 장치가 필요할까?
실제 부천은 서울과 인천을 잇는 도로가 도시 중심을 관통하고 있다. 때문에 도시 내에서 움직이는 속도가 빠르며 바로 옆 동네와도 물리적 심리적 단절감을 적지 않다. 2017년 복원된 심곡천은 도시의 속도를 조절하는 첫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심곡천은 부천을 가로질러 굴포천으로 합류되었다 한강으로 흘러가는 하천이다. 1986년 복개되어 도로로 사용되다가 30년이 지나 다시 물길로 복원되었다.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가 기둥처럼 박혀 원도심과 신도시를 구분하는 부천 시내를 심곡천이라는 작은 물길이 사람의 호흡과 속도로 연결한다. 유속이 줄어 들었기에 기억이 들춰지고 이야기가 쌓일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최예선 문화유산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