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존재했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났다. 소문은 무성했지만 명확한 실체가 없었던 블랙리스트 존재가 국정원 개혁위원회 보도자료를 통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MB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이 ‘좌파 연예인 대응 TF’를 만들어 정부를 비판한 문화예술인들을 관리하고 주요 활동 영역에서 퇴출시켰다. 이번에 공개한 명단에는 문화계 6명, 배우 8명, 영화계 52명, 방송인 8명, 가수 8명 등 총 82명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영화감독은 52명이나 된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6년 5월 민주노동당 지지를 선언했던 영화감독들을 추적해 대거 블랙리스트에 올렸던 것이다.

블랙리스트의 실체가 드러나자 문화예술계는 분노와 탄식으로 가득 찼다. 이름이 거론된 사람들이 불쾌감과 소회를 밝힌 가운데 구체적인 탄압의 실체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정부에 비판적인 발언을 했던 방송인 김미화 씨는 당시 진행 중이던 시사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강제 하차 당했다. ‘연예인 블랙리스트’를 처음 공개적으로 거론하면서 맞섰지만 이후 10여 년을 서고 싶은 무대에 서지 못했다. 예능프로그램에서 MB정부에 비판적이거나 풍자적인 내용을 언급했던 출연자들도 예외없이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연예인이 출연 중인 프로그램은 시청률이 잘 나와도 폐지해버리고, 전격 하차시키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졌다. 수년 간 출연은커녕 섭외 자체도 없어 힘든 시간들을 견뎌야 한 경우들도 있었다. 얼마나 자신감 없는 정부면 활동 자체를 할 수 없도록 손발을 묶었을까. 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에 이어 MB정부 블랙리스트까지 어찌 보면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당시에 누구나 예상했던 일이었다. MB정부 블랙리스트가 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의 원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쯤에서 우리나라가 과연 문화 강국인가 돌아보게 된다. 문화예술의 발전은 자유로운 생각과 표현에서 비롯된다. 문화예술인의 입을 막는 것은 문화 수준을 강제로 끌어내리는 야만적인 행위다. 비단 문화예술인 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가 자기검열의 속박에 갇혀 살았던 것이 사실이다. 블랙리스트 존재 자체가 참담한 일이다. 국가기관이 권한을 남용하여 표현과 학문·예술의 자유, 심지어 인격권, 차별받지 않을 권리까지 침해한 것은 민주국가에서 명백한 불법 행위다. 철저한 수사를 통해 두 번 다시 야만적 행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단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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