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꿈이 곳곳에서 산산조각 나고 있다. 거의 전 재산을 모아 장만한 보금자리에 금이 가고 물이 샌다. 안락한 삶의 터전에 대한 기대는 무너지고, 책임 소재 규명과 정당한 보상을 위해 지난한 세월을 소송에 할애하며 힘겨운 사투를 벌여야 한다. 부실 건축물은 경제적 손실 뿐 아니라 가족의 안전까지 위협하고 있다.

최근 경기도 동탄2신도시 부영아파트의 ‘무더기 하자’ 사태가 언론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경기도가 실시한 3번의 품질검사에서 211건의 문제점들이 드러났으며, 입주민들이 제기한 하자민원만 무려 9만여건에 달한다.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성명을 발표하여 ‘부영법’ 추진을 언급했고, 채인석 화성시장은 ‘현장 시장실’을 아예 해당 아파트 단지 내에 개소하여, 부실공사의 책임을 살피겠다고 나섰다.

이것은 몇몇 아파트만의 문제가 아니다. 부실시공의 적폐는 한국사회 곳곳에 만연하다. 특히 공동주택의 고질적 병폐인 불량·부실시공 문제는 최근 몇 년 사이 더욱 심각해졌다. 지난 9월 2일, 국토교통부 발표에 따르면 공동주택 하자보수 분쟁신고 건수는 2010년 69건에서 지난해 3천880건으로 무려 56배나 늘었다. 자재비와 인건비 절감을 위해 질 좋은 자재의 사용을 피하고, 심지어는 현장에서 자재를 바꿔친다고 하더라도 확인이 어렵다.

수익 극대화를 위한 부실자재 사용은 많은 사회적 비극을 낳았다. 삼풍 참사,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 사당 종합체육관 사고 등 안타까운 대형사고가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대한민국은 개발도상국에서 벗어나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섰지만, 건설 부문은 여전히 개발의 늪에 빠져있다. 이에 대안 가운데 하나로 건설자재·부재의 원산지를 공개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한국여성소비자연합이 실시한 ‘건설안전과 관련한 소비자 의식조사’에 따르면, 건설용 강재의 원산지 표시가 필요하다는 응답이 무려 92.6%에 달했다. 원산지 표시가 필요하다는 이유로는 건물 안전(65.3%), 철강재의 품질 관리(13.0%), 투명한 유통 환경 조성(9.5%), 부정부패 근절(8.1%), 소비자의 알 권리 확대(2.6%) 순으로 꼽혔다.

필자는 ‘건설자재·부재 원산지 공개’ 입법화를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왔다. 작년 6월, 삼풍 참사 21주기를 맞아 건설공사 현장 및 공사 완료시 게시·설치하는 표지판에 주요 건설자재·부재의 원산지 표시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어 올해 8월에도 사업주체가 주택공급계약을 체결하거나 입주자 모집공고를 하는 경우, 해당 주택에 사용될 건설자재·부재의 원산지 정보를 제공하도록 하고, 위반 시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하는 주택법 개정안 및 분양사업자가 분양광고를 할 때 원산지를 포함시키도록 한 건축물의 분양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긍정적인 변화도 있다. 서울주택도시공사의 경우 지난해 12월부터 ‘반입철근 원산지 관리기준’을 자체적으로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KS 품질기준을 충족하지 못 하는 자재가 현장에 반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재검사 및 수불부에 원산지 관리항목을 추가하도록 한 것이다.

부실 건축물에 대한 사후 규제 및 처벌 강화도 물론 중요하지만, 투명한 정보공개를 통해 부실공사에 따른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고, 품질이 검증된 건설자재의 사용을 제도적으로 장려해야 한다. 집은 생활공간이자 주요 자산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집의 뼈대인 자재엔 ‘깜깜이’인 채 화려한 외관이나 인테리어만 보고 짧게는 몇 년, 길게는 평생을 살 집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놓여있다.

건설자재·부재의 원산지 공개는 당연한 상식이다. 복잡한 이해관계는 모두 뒤로 제쳐둬야 한다.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재산권, 행복추구권, 생명권이 이윤의 논리 앞에 뒷전으로 밀려서는 안 된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데 빈틈이 있어서도 안 된다. ‘건설자재·부재 원산지 공개’ 입법화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어리석은 실수를 끝내야 한다.

이찬열 국회의원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