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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 합리적 해법은?

2017년 09월 12일(화)
김선희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노동의 대원칙이다. 이는 노동의 내용에 상응하는 보상과 처우를 함으로써, 노동 시장에서 분배의 공정성이 지켜져야 함을 의미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노동의 대원칙이 무너져 정의롭지 못한 노동계 문제로 지속적으로 거론되는 이슈가 바로 비정규직의 문제이다.

신자유주의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1997년 노동법 개정 이후, 노동유연화라는 명분 하에 진행된 비정규직 확대는 우리 사회의 노동문제 중 가장 심각한 문제로 거론되어 왔다. 비정규직 확대와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둘러싼 노-사 갈등 뿐만 아니라 정규직 근로자와 비정규직 근로자 사이, 즉 노-노 갈등으로도 표출되고 있다.

비정규직 근로는 고용형태의 정규성과 근로계약기간의 한시성 등을 기준으로, 정규직 근로와 대비된다. 비정규직 일자리는 정규직 일자리와 달리 상시적이지 않고 업무 강도와 책임 측면에서도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 비정규직 근로자는 정규직 근로자와 유사한 일을 하면서도 임금이나 근로시간, 복리후생 면에서 차별을 받게 되는 심리적 박탈감을 겪는다. 이러한 시대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문재인 정부에서는 대대적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선언하고,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 가이드라인과 로드맵을 발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후 첫 현장방문 장소로 비정규직 문제가 많이 거론되었던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해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약속을 했던 것이나, 세월호 참사 당시 학생들을 구출하기 위해 헌신한 기간제 교사에 대한 순직 처리를 위한 업무지시에서도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정책적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정부가 모범적 고용주로서 공공부문에서 선도적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추진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정부에서 약속한 대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가 실현되는 것은 지나치게 이상적이다. 현재 진행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대책의 핵심이 고용은 보장하되, 처우 개선은 최소화하는 무기계약직으로의 전환에 있기 때문이다. 이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아니라 사실상 중규직 양산을 의미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바램은 고용불안 해소와 더불어 불합리한 임금 및 고용조건을 개선해 달라는 것이다. 합리적 이성과 건전한 상식을 바탕으로 생각해 보자. 비정규직 숫자가 양적으로 증가하는 것 그 자체가 문제인가? 일자리의 다양성 그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비정규직 문제의 본질은 비정규직 일자리 종사자들에 대한 부당한 차별과 착취구조에 있다. 정규직 일자리는 정규직 종사자 대우를, 비정규직 일자리는 비정규직 종사자 대우를 합리적으로 맞추어 하면 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비정규직 종사자들은 정규직 일자리와 차이 없는 일을 하거나 오히려 더 힘든 업무를 하면서도 정규직 종사자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과 열악한 처우를 받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용불안을 벗기 위한 계약연장 및 정규직화를 기대하고 장밋빛 약속처럼 굳게 믿고 부당한 업무지시를 감내하고 과잉 충성을 하게 만드는 희망고문으로 몸과 마음이 소진된다. 무엇보다 불합리한 상황에 대해 정당한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제도적 소통 창구가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노동 시장 내에서 더욱 더 소외되는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

형식적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중규직화 양산으로 인한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는 정의 실현의 대원칙이다. 정규직 일자리에는 정규직 대우를, 비정규직 일자리에는 비정규직 대우를 하는 합리적 방식으로 노동개혁이 이루어질 때, 노동의 대원칙이 지켜질 수 있다. 소외되지 않고 인격이 존중받는 노동으로, 살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행복으로 느끼며 살 수 있는 그런 나라를 꿈꿔본다.

김선희 서원대 행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