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문중이 시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일이다.

시대 따라 의례준칙도 변해야 한다는 적폐론과 존엄한 가치를 그대로 유지하자는 주장이 대립되면서 ‘제당’에 대한 정체성 혼란까지 불러온 이야기다.

양자 ‘신성불가침’ 논리를 놓고 기득권과 불패론 사이에 일어난 모독 발언이 갈등을 일으켜 끝을 보지 못한 일화다.

문득 얼마 전 여성 비하발언과 관련된 당사자를 놓고 옹호 발언을 했던 이야기가 스쳐 지나갔다.

사회의 다양한 집단에서 정의와 불의, 진실과 거짓이 대립되는 곳마다 적폐론이 일면서 아성의 동아줄이 팽팽한 ‘불패신화’에 대한 개탄의 소리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코드 인사가 영원한 불패신화가 되어 무너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가 변해도 역사의 아이러니한 괴리가 집권과 비 집권 사이에 존재하는 굴레 속에 ‘도성’의 주인이 바뀌었어도 여전히 코드 인사 현역불패 신화가 사라지지 않고 있어 개탄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의료혜택 포퓰리즘에 체세포 논문조작은 과학의 후퇴라며 개혁의 스승인 혁신이 발목을 잡히더니 또 한 사람의 인사가 신성불가침 불패론 사이를 서성이다 낙마하자, 한창 무르 익어가던 하얀 ‘홍익’의 목화밭에 황달이 들어 ‘이구동성’ 거친 숨을 내 몰아쉬고 있다.

원칙과 기본의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이원 분리된 당략에 의해 대의명분마저 설 자리를 일어 방황하고 있는 마당에, 제 식구 감싸는 옹호의 품속에 안긴 문제아에 대해 구설이 잦아 들 줄 모르는 이유다.

샛강에서 만난 동지들이 여울목을 거치는 동안 그간에 세운 공이 혁혁하여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논리방정식에 불패성전은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어 새로운 이 시대 신성불가침이 되었다.

원초적 민주주의 스승이 ‘정의’임에도 근본이 적폐당하며 국민의 신뢰를 저버린 당략에 불가침의 상징인 애민의 영혼까지 모독당하고 있어 국민의 상실감이 큰 것이다.

민주주의 발전이 견제와 대립에 의해 발전하지만 국민에 대한 이율배반으로 신뢰회복의 항아리가 또 다시 오염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장애물이 나타날 때 마다 어김없이 머리 숙인 겸허가 감초로 떠오르고, 통과의례에 따라 ‘협치의 빅딜’ 방정식이 무리수를 낳으며 흠결이 국민 앞에 이해와 관용의 몫으로 던져지는 것이 오늘 날 이 땅의 정치 자화상이다.

하늘과 땅 사이에 섬겨야 하는 주인은 국민이다. 어렵게 살려 낸 민주화의 촛불이 바람에 꺼지지 않도록 막아 줄 흠결 없고 오염 되지 않은 신성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으로 무장한 삼고초려 의인은 정말 찾을 수 없는 것일까.

불신의 씨앗을 태워 버리지 못하는 ‘코드인사’가 사라질 때 현역불패도 자취를 감추면서 진정한 나라다운 나라의 참 모습이 세워질 것이다.

새 나라 샛별들이 바라는 위정의 자화상은, ‘환골탈태’의 정신으로 섬김의 기본자세 부터 갖춰질 때 가능한 것이다.

‘신성불가침’이 모욕당하면 정의와 진실, 애민 과 홍익의 그림자까지 모독당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원칙과 기본’ 사전에 들어 있는 또 하나의 진리인 신성한 민주주의가 모독당하지 않을 때, 비로소 이 땅에 공정하고 신성한 정의구현 달구지가 녹슬지 않고 굴러 갈 것이다.

지금 국민이 신성한 민주주의 정원에 촉촉한 정의의 햇살을 듬뿍 머금은 한 떨기 무궁화 꽃을 바라보고 싶어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종보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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