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살이

앙상한 나목의 등 위에 뿌리내린
투명한 푸른빛의 작은 숲은
바람개비들의 숨은 기도처이다

저 기도처에 밤새 흰 눈 소복이 쌓인 날 아침
꿈인 듯 찾아온 햇살이 언 손길 위에 머물곤 하는데
시린 손끝을 더 시리게 하는 지난밤의 일을
바람개비들은 여전히 기억하는지
하얀 눈을 움켜쥐고 잘 놓지 않는다

손끝의 지문이 새겨진 흰 눈을 꼬옥 쥐고 있다가
기도하는 손이 풀리는 시간은
먼 기억처럼 눈이 부신 아침 해를 오래도록 바라볼 때이다

언제나처럼 신성한 숲의 기도처에 찾아든 햇살
지난 일의 시린 추억을 훌훌 털어내면
겨울눈은 참 맑은 푸른빛이다



권채영
경북 예천 출생. 2004년 ‘미네르바’로 등단. 공저 ‘참으로 슬프게 붉어지면’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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