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입추가 지나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부니 무더위에 지친 몸이 가을을 반긴다. 100세 인생 시대에 나의 생애주기를 계절로 표현한다면, 가을에 가까울 것이다. 가을의 매력은 역시 농익음과 풍성함 일 것인데 사회복지 전문가로서 30년 이상 현장을 누빈 나는 과연 가을과 같은 소양을 겸비했는가, 내 주변은 어떠한가, 진정한 전문가의 길은 무엇인가 특히 고심하게 되는 요즘이다.

‘전문가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는 모두 막힘없이 전문가의 사전적 정의에 대해 동일하게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답다 라는 것은 어떤 의미이고, 전문가의 길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는 언뜻 통일된 정의를 내리기 쉽지 않다.

‘전문가의 길은 무엇인가’ 강조하고 싶은 첫 번째, 전문가는 인간에 대한 존중과 신뢰를 우선으로 해야 한다.

법을 다루는 전문가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말 그대로 법을 다루는 일이다. 그러나 정말 법대로만 했을 때는 문제가 발생한다. 독재정권 시절에 일어난 수많은 고문, 용산의 철거민이 화재로 죽은 용산참사 등도 모두 법대로 한 일이었다. ‘정의’ 와 ‘인간에 대한 존중’ 없이 법을 다루는 전문가는 당대에는 칭송받을지 모르나 역사는 권력의 하수인으로 기록할 것이다.

전투와 방어의 전문가인 군인은 훈련병 시절부터 공포를 학습한다. 공포심을 길러야만 엉뚱한 전투에서 가치 없이 죽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존중 없이 동료 간, 계급 간 공포심을 조장한 결과는 학대와 성희롱으로 귀결된다.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하여도 꾸준히 각광받을 수 있다는 사회복지전문가들은 이런 필수조건이 충족되지 않을 때 파장이 더 심각하다. 보육교사의 아동학대, 사회복지사의 클라이언트 인권침해 등은 사회에 전문가로서의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자멸하는 단초가 된다.

‘전문가의 길은 무엇인가’ 두 번째, 전문가는 겸손한 자세로 항상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사람들은 전문가가 되기 위한 자격을 취득하거나 일정 이상의 경력이 쌓이면 본인들의 행동이나 판단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조심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전문가의 지식이 모든 의사결정의 알파와 오메가는 아니라는 것이다. 전문가가 내린 결정이 항상 그들이 예상한 대로 진행되지 않는 사례는 무수히 많다. 근대 경제학 이론의 개척자로 추앙받으며 미국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린 어빙피셔(1867~1947)은 평생 모은 재산을 주식 투자로 날렸다.

모 일간지 칼럼에서 한 교수는 ‘미래 전문가는 호모 디페랑스(Homo Differance)’라고 주장했다. 호모 디페랑스는 전문성과 경험이 깊어질수록 세상을 보는 특정한 방식에 매몰되어 창의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고착화됨을 경계하면서, 나와 다른 전문가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와 그 차이 속에서 발생하는 위대한 가능성을 발견하는 ‘사이 전문가’ 라는 뜻의 프랑스 용어이다.

세상은 넓고 다종다양하다. 4차 산업혁명을 맞이하여, 새로운 전문 직종은 계속해서 생겨나겠지만, 시대와 종류를 막론하고 ‘전문가’는 항상 인간을 향해 있어야 한다. 사람과 사람, 전문가와 전문가, 그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존중하고 배려할 때 우리는 계속해서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성철 한국사회복지공제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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