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떤 대상을 본다’라는 사실에는 그 대상만을 별개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의 주변을 참조하여 그것을 상대적으로 지각한다는 사실이 함축되어 있다. 이를 참조틀 즉 ‘frame of reference’라고 한다. 흔히 알려진 ‘상대평가’라는 개념 역시도 비교되는 대상군 즉 참조틀 중 어느 정도의 위치인지에 대한 개념이랄 수 있겠다.

지난 수 년간 강력범죄자들을 만나다보니 이제는 인간 속에 내재한 악마적인 본성 역시 어느 정도는 ‘급’이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측량하게 된다. 살인사건들 역시 살인의 고의성이 있느냐 없느냐보다는 피해자에 대한 악성이 어느 정도 심각한 것이었는지를 추정하게 된다. 실무율의 법칙이 적용될 수 있기보다는 다양한 스펙트럼 상에서 살인범의 악마성도 해석될 수 있겠다.

이 같은 연장선상에서 인천 연수구에서 발생하였던 초등학생 살인사건의 주인공들이 지닌 악마성은 과연 어느 정도에 위치할까? 검사는 현재 소년범에게 적용할 수 있는 법정 최고형에 더하여 전자감독 30년을 주범인 김모양에게 구형할 모양새다. 문제는 공범이었던 박양인데, 수사 초기단계에서 김양에게는 시신 유기에의 조력자가 있었음이 어느 정도 밝혀졌었다. 하지만 이 둘 간의 관계의 본질까지는 명확히 규명이 되지 않았었는데, 그러다보니 피해 아동 살해에 대한 공범 박양의 역할을 놓고 논박이 진행되고 있다.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지난 3월 29일 10대 청소년 김양은 8살 초등학생을 유괴한 후 살해하였다. 그녀는 시신을 훼손하고 아파트 물탱크 위에 유기하였는데, 경찰은 수사과정에서 피해 아동의 시신 일부가 공범 박양에게 전달되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들은 엽기적 잔혹물에 심취하였던 자들로서 SNS 커뮤니티를 통하여 만난 사이였다. 현재 박양은 김양의 살인행각을 방조했을 뿐 직접적인 가담을 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변호인단 역시 박양은 SNS 상에서 김양과 살인사건 당시 대화를 나누었을 뿐, 실제로 김양이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를 줄 몰랐었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최근 법정 증언에서는 반전이 일어났다. 그것은 바로 김양이 자신의 살인행각이 박양이 시켜서 이루어지게 된 것이라고 진술을 번복하면서 부터이다. 살인을 방조한 것과 교사한 것은 매우 큰 차이가 있어서, 교사범은 형법 31조에 따라 살인을 직접 수행한 자와 같은 처벌을 받게 된다.

현재 검찰에 의하여 새롭게 법정에 제시된 증거는 김양이 범행 직후 경찰 조사를 받을 당시 박양과 주고받은 트위터 1대1 메시지 내용이다. 가장 핵심적인 대화는 다음 것들인데, 박양이 김양에게 ‘내가 얽힐 일은 없나요’라고 묻자 김양은 ‘없도록 할게. 깊이 얽히진 않을거야. 일단은 내 정신문제라고 서술하고 있어’라고 답변하였다. 이어 박양이 ‘핸드폰 조사는 안 하던가요’라고 묻자 김양은 이에 대해 ‘응, 경찰에서 연락은 가겠지만 전과 붙일 일은 없도록 장담할게’라고 답을 보냈다. 그러자 박양은 김양에게 ‘미안해. 이기적이라서’ ‘나 당신 많이 좋아해. 기다릴게. 믿어줄래요?’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둘 간의 대화 내용으로 추론해 볼 수 있는 것은 김양이 박양을 비호하고 있다는 점과 박양이 김양의 방어적인 태도를 그녀에 대한 애정을 확인시켜줌으로써 교묘하게 유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둘 사이의 대화가 만일 연인관계에 놓인 공범들 간에 이루어졌었다면 ‘교사’(敎唆)의 다이내믹을 훨씬 이해하기 쉬웠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상기해내야 하는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김양의 정신질환이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는 사실이다. 인지적 장애 없는 사회성 결여. 우울증 등 만성질환으로 인한 친구관계의 결핍, 그 빈틈을 비집고 들어온 박양의 절대적 위치, 그리고는 김양의 박양에 대한 집착. 만일 이것이 당시의 상황이었다면 유일하게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해주었던 박양의 지시에 사생결단으로 헌신하고 매달렸던 김양의 행적은 ‘왜’라는 질문을 메우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가끔 연인은 서로를 위하여 목숨을 내어놓기도 한다. 굳이 로미오와 줄리엣을 거들먹거리지 않더라도 사랑에 결핍된 미성숙한 소녀에게 박양이라는 존재는 꼭 인정받고 싶은 유일한 대상이었을 것이다.

같은 시대에 자식을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이 사건을 바라보자면 기분이 찹찹하기 짝이 없다. 어찌하여 부모에게 보내야 할 절대적 신뢰와 애정을, 만난 적도 별로 없는 남에게 그리도 헌신적으로 쏟아 부었단 말인가? 요즈음 청소년들에게는 관계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일이 사이버공간 상의 유희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다. 악마는 몰가치적 판타지 세상에서 탄생하였다. 통탄할 노릇이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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