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하지(夏至)를 지나 소서(消暑)로 접어들었다. 가는 곳마다 수풀이 무성하고 벼도 쑥 커 올랐다.” 농촌 소설가 오유권이 쓴 ‘대지의 학대’라는 작품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제 21일이 1년 중 낮이 가장 긴 하지였는데, 이 시기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 아시아권에서는 농사일로 가장 바쁜 때이다. 우리 속담에 ‘하지를 지나면 발을 물고에 담그고 잔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벼농사를 잘 짓기 위해서 하지쯤부터는 논에 물을 대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이고, 그즈음에 농부들은 아예 논에서 살다시피 해야 한다는 뜻일 게다. 그런데, 근래 들어 거의 매년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곳곳에서 겪고 있는 가뭄피해의 정도가 예사롭지가 않다. 가뭄의 원인이 엘니뇨 현상으로 일어나는 기상 이변 때문이라고도 하지만, 사실 한발(旱魃)로 인한 어려움은 삼국시대부터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로 논농사가 주였던 이 땅에서는 빈번한 일이었다.

이달 초, 홍성에서 기우제(祈雨祭)를 올렸다는 뉴스를 접하긴 했지만, 예전엔 가뭄이 심한 곳마다 기우제를 지내는 곳이 많았다. 그러고 보니 어릴 적 주위로부터 들은 이야기 하나가 생각난다. 유소년 시절을 보냈던 고향과 이웃한 곳에, 마치 학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형상을 하고 있다 하여 비학산(飛鶴山)이라 불리는 명산이 있다. 이 산 6부 능선에 있는 ‘무제등’에서 올리는 기우제는 영험하기로 유명하지만 그보다, 멀리 영일만이 내려다보이는 산 정상에 얽힌 이야기가 더 흥미롭다. 여기엔 예부터 천하명당으로 여겨진 그 영봉(靈峰)에 묘를 쓰면 ‘자손들이 잘 된다’ 거나, ‘가뭄이 든다’는 서로 부딪힐 수밖에 없는 두 가지 속설이 공존하고 있는데, 그래서 한 해 농사의 풍흉(豊凶)을 좌우하는 6~8월에 가뭄이 들면, 지역민들은 으레 누군가가 그 정상에 몰래 묘를 썼기 때문이라 믿는다. 하여, 부녀자들이 중심이 되어 호미 한 자루씩을 들고는 산으로 올라가 묘처럼 봉긋이 생긴 곳을 죄다 찾아 파헤쳤다고 하는~ 어릴 적 그 얘기를 들으며 느꼈던 섬뜩함은 지금도 기억이 또렷하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주민들은 산 정상에 묘 쓰기를 금기로 여기고 있었으나, 명당자리에 눈이 먼 외지 사람들이 몰래 암장을 하곤 하여 그런 일이 아주 드물진 않았던 모양이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 봉분을 파헤치기 시작하는 순간,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산을 내려올 무렵이면 모두들 비에 흠뻑 젖었다고 하는데, 어릴 적 귀동냥한 이야기니 사실여부를 확인할 길은 없다.

기우제 이야기를 하면 미국의 애리조나 사막지대에 살고 있는 ‘호피 인디언’들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그들에게 영험한 레인메이커가 있어서일까? 호피 인디언들이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온다고 한다. 이유는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이라는데, 누구나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실소(失笑)를 자아내기 때문에 어찌 보면 마치 그들을 조롱하는 유머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하버드 대학의 어느 연구그룹이 호피 인디언들의 삶을 심리학적 조사의 연구주제로 삼으면서 이들의 삶은 ‘긍정의 힘’에 관한 메시지를 전달할 때 곧잘 인용되곤 한다. 비과학적인 기우제를 통해 인내의 정신과 사회를 위한 긍정의 지혜를 발견한 것이다. 지나친 해석일 수도 있겠으나, 자기계발에 관한 어떤 책을 들여다보면 톨스토이, 피카소, 나이팅게일, 처칠과 같은 위인들과 월마트 창업자 샘 월튼 같은 이를 인디언 기우제 정신에 충실했던 사람들로 꼽고 있다. 그렇다면 6.25 전쟁 67주년을 이틀 앞둔 오늘, 나는 서두에 언급한 소설가 오유권도 그 대열에 이름을 올려주고 싶다. 1928년 전남 나주, 한 빈농의 집안에서 태어나 학력이라고는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인 그는, 독학으로 인내하며 문학공부를 하고 <현대문학>을 통하여 ‘두 나그네’로 등단하였다. 그렇게 작품 활동을 하던 중, 1981년 뇌졸중으로 반신불수가 되었으나 1999년 작고할 때까지 불편한 몸으로도 집필을 계속하여 무려 250여 편의 장, 단편을 남기고 있다. 특히나 전 국민의 60% 이상이 농민이었던 당시 50년대, 전쟁 직후의 농촌을 무대로 농민들의 삶과 애환을 실감 나게 녹여내는 그의 작품들은 그 자체로 우리가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할 역사이기 때문이다.

박정하 중국 임기사범대학 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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