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에 꽃이 피는 아름다운 계절, 한강 위로 시체가 떠오른다면, 그리고 누군가 수면내시경 도중, 살인을 고백하는 듯한 말을 털어 놓는다면 과연 무엇이 느껴지고 무슨 생각이 들까.

영화 ‘해빙’은 무의식 저 아래 봉인되어 있었던 살인 행각을 둘러싼 미스터리 스릴러다. 또한 영화의 소재 역시 완전 허구이기 보다는 화성연쇄살인사건 등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여러 연쇄살인사건을 참고해 경기도 북부의 한 신도시에서의 이야기로 각색한 ‘팩션’이다.

지역 병원 도산 후 이혼을 당하고 선배 병원에 취직한 내과의사 승훈(조진웅)은 치매아버지 정노인(신구)을 모시고 정육식당을 운영하는 성근(김대명)의 건물 원룸에 세를 든다.

어느 날, 정노인이 수면내시경 중 가수면 상태에서 흘린 살인 고백 같은 말을 들은 승훈은 그 날부터 부자에 대해 빠져나올 길 없는 의심과 두려움이 일기 시작한다.

한동안 조용했던 이 도시에 다시 살인사건이 시작되고 승훈은 공포에 휩싸인다. 그러던 중, 승훈을 만나러 왔던 전처가 실종되었다며 경찰이 찾아온다.

혼자 들었기에 증거도 기록도 없어 남에게 이해시킬 수도 없고, 혼자서는 해결할 수도 없는 의혹과 공포의 한 가운데, 승훈의 시선과 심리를 쫓아가는 영화 ‘해빙’은 주인공이 절대악인 살인마를 찾고 추격하는 한국 스릴러의 패턴과는 다르다. 살인의 공포는 승훈과 함께 관객 또한 숨 쉴 틈 없는 서스펜스로 조이며 심리스릴러의 새로운 재미를 선보이고 제각기 다른 캐릭터들의 비밀이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르며 퍼즐처럼 맞춰져 드러나는 사건의 실체는 미스터리 본연의 재미에 충실하다.

또한 이 영화는 인물과 배경에서 감독의 메시지가 녹아있다. 영화에서의 논밭과 고층 아파트가 공존하고 원주민과 이주민의 주거 지역이 묘하게 구분되어 있는 풍경이 그러하고 해결되지 않는 사건이 파묻혀 있는 땅 위에 올라가기 시작한 고층의 아파트들이 그것이다. 이를 보여주며 영화는 많은 것을 해결하지 않은 채 개발과 경제라는 욕망의 드라이브를 걸었던 한국 사회의 대표적 풍경을 시사한다. 그리고 승훈의 시선과 감정을 쫓아 드러나기 시작하는 비밀의 실체는,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악을 끌어내는, 삶 자체가 서스펜스로 가득한 곳. 지금의 한국 사회를 돌아보게 만든다.

한편 ‘해빙’에서 주연을 맡은 조진웅은 작품 속에서 기존과 다른 변신을 선보인다. ‘범죄와의 전쟁’부터 ‘시그널’까지 스크린과 TV를 통해 보여졌던 그의 모습이 남성성으로 관객과 시청자를 사로잡았다면 ‘해빙’에서 그는 팽팽하고 예민한 심리 상태,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의심의 한가운데 놓인 채 시시각각 변해가는 감정을 섬세하게 연기한다.

영화 ‘해빙’은 한국사회의 한 단면을 꼬집는 동시에 또다른 조진웅표 연기까지 감상하는 재미의 종합선물세트를 약속한다. 3월 1일 개봉. 황호영기자/alex1754@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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