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도 이사회 승인 받고 수정법 막혀 투자 포기

북한과 맞닿은 연천군에는 남쪽으로도 보이지 않은 철조망으로 가려져 있는 도시다.

수도권정비계획법(수정법), 군사시설보호법, 문화재보호법 등 켜켜이 쌓인 규제가 이북을 갈라놓는 철조망 처럼 연천군을 고립시키고 있다.

대기업은 없다. 100여개에 불과한 기업들은 모두 5~10인 이하의 근로자를 두고 있는 영세 기업들이다.

지성의 상아탑인 대학교도 없고, 주말에 연인 또는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영화관도 없다.

1983년 8만 명이던 인구는 지난해 4만5천 명으로 반토막 났다.

수정법에 묶여 있는 30년간 3만5천 명의 연천군민이 고향을 등지고 타지로 떠났다.

◇기업을 할 수 없는 수도권 연천군 = 연천군은 지역의 미래 일자리와 먹거리를 마련하기 위해 기업 유치에 부단히도 애를 썼다.

하지만 현재까지 연천군에 들어온 대기업 수는 ‘0’이다.

기업이 들어오려면 수도권정비계획법 때문에 국무총리실 심의위원회를 통과해야 한다.

창고 하나라도 증축하려면 군사시설보호법 때문에 막힌다.

2012년에는 650여 명 정도가 근무하는 규모의 대기업 유치에 나섰다가 실패했다.

당시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임진강과 한탄강의 물을 20년 동안 공업용수로 무상제공하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러브콜을 보냈다.

기업도 이사회에서 투자 의결을 했지만 수정법 때문에 유치가 무산됐다.

이런 이유로 2011년부터 4곳의 기업이 연천군에 둥지를 틀려다 발걸음을 돌렸다.

연천군에 등록된 기업은 130개지만 실질적으로 활동을 하는 기업은 100개에 불과하다.

나머지 30개 기업은 개점휴업이거나 이름만 남은 기업이다.

활동중인 100개 기업도 규모가 영세하다. 대부분이 근로자가 5~10인에 불과한 영세 사업장이다.

첨단 기술은 고사하고 그 흔한 제조업체도 백학산업단지에 입주한 일부 기업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식료품을 즉석 가공할 수 있는 정도의 기술력만 가지고 있다.

상황은 최악이다. 현재 연천군에 위치한 기업들도 다른 지역으로 나가려고 하고 있다.

충청북도 음성이나 충청남도 당진만 가더라도 교통인프라가 훌륭하고 각종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연천군 관계자는 “수정법 때문에 기업을 애초에 유치할 수가 없다. 원천적으로 봉쇄가 됐다”면서 “열악한 투자환경 때문에 기업들이 연천군에 투자할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하게 한다”고 말했다.


◇대학도 영화관도 없다. = 연천군에는 전문대 이상 교육기관이 한 곳도 없다.

대학 유치시도는 2004년 이후로 멈췄다.

당시 전곡읍 은대리 일대 132만㎡에 5천여억 원 규모의 서울산업대학교 제2캠퍼스를 조성하려다 실패했다.

연천군은 서울산업대와 재학생 8천 명 규모의 캠퍼스 설립하는 내용의 협약까지 맺었지만 대학 내부의 반발로 무산됐다.

수정법 등 각종 규제에 묶인데다 도로 등 최소한의 기반시설도 없는 연천군에 캠퍼스를 조성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기초교육 환경도 열악하다.

연천군 중면의 중학교 평균 통학시간은 78분(도보 기준)으로 경기도내 최 하위권이다. 장남면도 62분이나 걸린다.

서울시 면적의 1.2배에 달하는 면적에 영화관 하나도 없다.

영화 한편을 보려면 인접한 동두천시로 원정을 떠나야 한다.

응급시설 접근성도 떨어진다.

중면에서 응급시설까지는 차로 1시간여가 걸린다. 장남면도 40여 분을 가야 응급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고령인구 비율이 21.94%로 경기도내 가장 높은 연천군의 의료환경은 최악인 상황이다.

전곡읍에 거주하는 이모(72)씨는 “서울에 사는 아들이 계속 변변한 의료시설 없는 곳에 있지 말고 와서 같이 살자고 한다”면서 “시골에 있는게 나도 편하고 아들도 피해를 안 주지만 건강 때문에 떠나야하나 고민된다”고 말했다.


◇각종 개발사업도 멈췄다. = 연천을 옭아매는 송곳같은 규제는 각종 개발사업의 바람을 빼 놓고 있다.

지역경제에 활기를 넣어보겠다며 추진하는 사업들이 수정법으로 인한 사업성 부족 등의 이유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연천읍 옥산리 4만5천㎡에 822세대 규모의 아파트를 짓는 옥산지구 도시개발사업은 기반시설 공사를 완료했지만 민간사업자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경원선 전철 연장과 국도 3호선 우회도로 개설 등 다른 지역개발사업이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주택수요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전곡읍 4만7천㎡에 58억 원을 들여 세계캠핑존을 조성하는 사업도 2017년 12월 준공이 목표지만 규제 때문에 경쟁력이 부족해 지연이 불가피하다.

480억 원을 들여 군남면 28만3천㎡에 평화공장, 종합전시장, 숙박시설, 카약·카누학교 등을 짓겠다는 임진강유원지 조성사업도 예산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연천 고대산베이스볼파크 조성사업은 지난해 9월부터 사업이 멈춰섰다.

군비 35억 원, 민자 100억 원을 투입해 야구장 5면, 실내연습장, 사계절 썰매장 등을 조성하겠다던 사업은 야구장 3면과 클럽하우스만 조성된 상태다.

연천군 관계자는 “수정법 상 성장관리권역으로 묶여있는데다 군사시설보호구역까지 겹쳐 개발사업 자체가 어렵다”면서 “기반시설을 갖추지 못한채 개발한다는 것은 손발을 묶고 달리기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떠나가는 주민들 = 연천군의 인구는 30년동안 절반으로 줄었다.

1983년 8만 명에서 2011년 4만5천여 명으로 줄었다. 현재도 지속적으로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연천군으로 들어오는 사람은 군 장병뿐이지만 이마저도 연천군에 주소를 두지 않는다.

군인 전입자 지원금으로 주소지 등록을 유도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그들에게 연천은 그저 직장이 있는 땅이다.

줄어드는 인구를 막기위해 이사 비용, 정착지원금, 정착장려금, 출산장려금, 군인 전입자 지원금 등 수많은 인구유입책에 연간 5억 원씩 쏟아부었지만 속수무책이다.

2012년부터 2015년까지 들인 예산만 20억1천300만 원에 달한다.

결국 올해부터 이사비용 지급과 귀농·귀촌 대상으로 주던 정착장려금 지급을 중단했다.

부사관 이상 군인 전입자에게 주던 상품권도 30만 원에서 20만 원으로 줄였다.

연천군 관계자는 “낙후지역 연천군이 어떻게 수도권이냐”면서 “정부로부터 소외받고 희생해온 연천군민이 희망조차 잃기 전에 수도권 범위에서 제외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조윤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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